해외문학기행문

영국 기록 일지
글쓴이 : 장은서 날짜 : 19.07.01|조회 : 330

 

영국 기록 일지 

나는 여기에 영국에 대한 분명한 경험이 담긴 내용만을 적을 것을 다짐함.

 

 

 

1. 아니 휴학할 동안 유럽도 안 가고 뭐했어요

 

유럽 여행은 스펙이다. 적어도 지금을 살아가는 대학생들에게 있어서는 그렇다. 학교 게시판은 매 학기마다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유럽여행 프로그램으로 채워지고, 방학이 되면 독일, 프랑스, 벨기에 따위의 풍경과 어우러진 대학생들의 인스타그램 사진이 가득하다. 특히나 유럽이란 곳은 휴학을 한 대학생들에게 있어 어떤 ‘필수 과제’와 같이 여겨지곤 하는데, 해당 기간 동안 유럽을 다녀오지 않으면 으레 ‘아니 휴학할 동안 여행도 안 하고 뭐했어요?’ 라는 질문이 들어오기 마련이고,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나라를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다녀오는 것이 기성세대에게 있어 어떤 ‘젊은이의 패기’ 따위쯤 되기 때문인 듯하다. 어쨌거나 그렇기 때문에 2017년 가을, 특별한 계획 없이 휴학 신청 버튼을 누르고 방구석에서 뒹굴거리던 장은서는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뒤적거리면서도 어렴풋한 강박을 느끼고 있었다. 그건 방학 일기가 한 달째 밀린 개학 일주일 전 초등학생의 마음과 비슷했다.

 

2. 과제와 일기는 밀려야 제 맛

 

일기장을 결국 빈 종이로 제출한 장은서는 복학을 하고 나서야 유럽을 가게 된다.

 

장거리 비행은 할만했으나 돌이켜 생각하면 뭔가 아득해지는 지점이 있었다. 이국적인 건물의 모습을 보며 계속해서 파주 영어마을을 떠올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악명 높은 영국 음식은 그렇게까지 맛이 없는 편은 아니었다. 맛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 전철 안은 통신이 잘되지 않았고 길을 걸으면 곧잘 산책하는 강아지들이 보였다. 숙소 근처에 있는 큰 공원엔 청설모가 많았는데 아는 체를 하면 달려와서 요구하는 눈빛을 그렇게 보내댔다. 외국인이었기에 식당이나 대중교통에서 종종 의아한 시선을 받기도 했지만, 뭐가 됐든 그 곳도 사람 사는 곳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적대적인 공간은 아니었다. 오히려 숙소는 집과 같은 편안함을 불러왔다.(숙소가 정말 ‘집’이긴 했다) 당장에라도 한국에 있는 집으로 도망치고 싶은 마음과 이곳에 오래 머물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는 일주일이었다. 사진을 많이 찍었고, 여느 대학생들처럼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잔뜩 올렸다. 기행문을 쓰면서 참고를 잘 하고 있으니 이 ‘필수 과제’는 A+를 맞을 것이다.

 

벌써부터 느낌과 감정만 남고 휘발되기 시작하는 여행의 기억을 더듬더듬 되짚어본다. 아무래도 옥스퍼드 대학이 제일 인상 깊었다. 저번 해에 피 튀기는 입시를 치른 수험생이 집에 있기도 했고, 복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대학의 시스템에 다시 적응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한국학을 배우는 옥스퍼드대 학생들과의 만남은 여러모로 좋은 자극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은 한국에서 노벨문학상이 나오지 못하는 이유가 ‘번역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한국에만 통용되는 어떠한 표현, 다양한 의성어와 의태어, 특정 사물에 대한 다양한 단어들이 다른 나라의 언어로 번역이 되었을 때, 원본만이 가진 것을 온전하게 전하진 못한다고. 그렇기 때문에 번역 과정에서 원본보다 좋은 글이 되기도 하고, 그 반대가 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한편으로 수없이 번역되고 공유되는 것이 문학이기도 하다. 옥스퍼드대 한국학 학생들은 한국의 글을 어떻게 번역해야 독자들의 호응을 잘 이끌어낼 수 있는지 연구하고 있었는데, 영국 사람들의 문화를 글에 접목해보기도 하고, 그래픽 노블에서만 허용했던 의성어와 의태어 표현을 문학에 사용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번역은 나라와 나라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인 셈이다. 보다 편한 다리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학생들의 열정이, 그간 미루는 삶을 추구해온 과거를 되짚어보게 했다. 부지런히 살아야지. 해야 할 것 좀 미루고 그러지 말고. 그러는 이 기행문도 제출을 조금 밀려 하게 될 것 같지만.

 

3. Beginning=End / End=Beginning

 

하여간 처음부터 우리들은 묘한 인연이었다. 혈연과 지연만 빼고 모든 연緣에서 하나씩 접점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건 원래 문학이라는 판이 좀 좁기도 하겠지만,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한다. 영국에서 머무는 내내 첫날과 마지막 날만 비가 왔는데, 거기에 첫날과 마지막 날에 (어쩌다 보니) 같은 음식을 먹고 우리들은 입을 모아 수미상관을 떠올렸다. A-B-A, A-B-C-A, 맞나? 사실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있지만 고등학생 시절 국어 점수는 형편없었다. 문법과 각종 표현기법이 워낙 어려웠기 때문이다. 쓰면 쓰는 거지, 무슨 문법과 표현을 하나하나 생각하면서 해……. 아무튼 처음과 끝이 같으니까 이 끝은 다시 처음이 될 거다. 다시 만나서 밥 먹자는 얘기다. 그냥 하면 좋을 말을 이렇게 거창하게 하는 건 괜히 의미나 한 번 더 두어서 나쁠 것도 없기 때문이다.

 

4. 진짜_이게_마지막_최종.hwp

 

히드로 공항에서 일곱 시간 남짓을 표류하는 동안 이전 수상자들의 기행문을 많이 읽었다. 읽으면서 내내 나는 뭘 또 어떻게 쓴다, 했는데 그래도 어찌어찌 마지막 문단까지 왔다. 잘 쓴 글은 아니지만 괴로운 글도 아니었으니 이만하면 되었다. 그나저나 마무리 문장을 멋있게 하고 싶은데 마땅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 그러니까 유명한 동화들의 마지막 구절을 인용하려고 한다.

 

 

 

2월 17일 오후 3시, 모두가 한국에 무사히 도착했고 집으로 잘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아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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