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기행문

대산대학문학상 해외문학기행 기행문
글쓴이 : 권지연 날짜 : 13.03.08|조회 : 9328


글 / 권지연_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1학년. 제11회 대산대학문학상 시부문 수상자

1. 두 개의 메모
2013-01-24 나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베를린으로 가는 열차 안에 있다. 옆자리에는 선우가 잠들어 있고 유리창에 금발 여자가 책 읽는 모습이 비친다. 책장 넘기는 소리가 들린다. 유리 너머는 눈 쌓인 침엽수림과 검은 터널의 반복. 내 좌석은 역방향이다. 모든 풍경이 거꾸로 흘러간다. 선우가 잠들기 전 나는 조연호의 시에서 ‘기억은 생각의 지옥이다’라는 문장을 보여주기 위해 책에 고개를 박고 있었고 선우는 예쁜 마을이 보인다며 내 어깨를 흔들었지만 내가 고개를 들었을 때 마을은 지나가버리고 없었다. 마을은 움직이지 않는다. 내가 어느 겨울 프랑크푸르트에서 베를린행 열차를 타고 지금과 같은 방향에 앉게 된다면 다시 유리 너머로 그 마을이 지나갈 것이다. 하지만 그때 내가 이 마을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까. 우연히 그 마을을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해도 미래의 마을은 오늘의 마을과 같지 않다. 시간이 집 한 채를 헐든 어쩌든 마을을 늙혀 놓겠지. 나는 이 마을을 영원히 놓쳤다. 지금 글을 쓰는 순간에도 오늘의 마을들이 열차의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여행의 경험을 글에 가둔다는 것이 가능할까. 글을 쓰는 것은 책에 밑줄을 치는 일 같다. 내 생은 이미 펼쳐져 있고 나는 나를 읽다가 밑줄을 친(글을 쓴)다. 맥락 없는 감화다.
2013-01-27 다시없을 호화스럽고 편한 여행이지만 자극에 무감동해져가는 나를 발견한다. 모르는 길을 짐을 끌고 따라간다. 내가 쓰는 글들도 이런 것이 아닐까. 담론의 연필심이 눌러놓은 자국을 따라 쓰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필압만 느끼며 흥분한다. 내 앞에 있는 미술관 벽과 발밑을 구르는 먼지덩어리들과 벌거숭이 벌레 같은 사람들. 이 공간 안에서 움직이고 정지해 있는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시야로 밀려들어온다. 내 옆에 있는 검은 조각상을 만든 사람은 죽었다. 이 미술관 안을 채운 사람들은 모두 다른 시각에 태어났고 다른 시각에 죽을 것이다. 사물들과 관람객들의 모든 시간은 고유하면서 다르다. 개체의 시간들이 구획된 공간에서 만나고 헤어지며, 무수한 언어들이 뒤섞이고 이해와 오해를 반복하며 문명이라는 거대한 수레바퀴가 굴러가고 있다. 문명의 시스템은 투명하게 진화되어 왔다. 생태화 된 문명은 피를 담고 가두는 갈비뼈와 내장처럼 개인의 신체에 잠복하여 작용한다. 문명은 이미 내 몸속에서 면적을 확보하고 행동과 생활에 강력한 영향을 행사하는 기관이다. 유전자에 내재된 생체 시계처럼 자동화되어 사용과 비사용의 경계를 의식할 수 없는 언어 같은 것들. 나는 언어의 의미망에 의해서만 사고 가능하다. 언어의 그물에 포섭되지 않는 감각과 풍경들은 손우물에 담은 물처럼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린다. 현상체험과 기억 사이에 탈락하는 천문학적으로 많은 미시적인 풍경들. 그것들은 모두 증발하고 기억의 흑막에 찍어놓은 점들만이 성좌가 된다. 과거는 기억의 좌표를 따라서만 존재한다. 현재는 나라는 매체에 의해 과거로 쉼 없이 번역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왜곡과 미화. 전부 오역 이다. 지혜로운 사람과 멍청한 사람 사이, 향수를 뿌린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자와 구린내가 나는 늙은 노숙자 사이의 차이를 극명하게 인식할수록 나는 사회기계가 되어가는 것이다. 사람다운 사람이 된다는 것은 결국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체험했던 모든 사건들의 강렬함과 시시함의 낙차 속을 헤쳐 무수히 반짝이고 있는 모든 순간이 소중하고 고유하다는 사실에 소급하여 감사함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건전함으로 수렴되는 내 사고회로가 싫다. 이 혐오는 경험을 글과 일치 시키려는 시도와 더불어 글을 완성시킬 수 있다는 환상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헛된 기대가 없으면 착각으로 인한 고통도 없다. 행동과 결과는 일치불가능성을 띈다. 개인의 기획력은 자고 일어날 때마다 달라진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와 다르다. 닮은 역사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아등바등 서로의 교집합에 발을 정구다 보면 정신은 금방 흙탕물이 된다. 흙탕물 속에 오래 있으면 살이 썩는다. 썩어가는 나는 열등하다. 인간은 늘 어리석고 외로워서 괴롭지만 자기 역사와의 일치 불가능성에 대해 이해하고 포기를 배울 때 조금이나마 덜 괴롭게 된다. 그게 귀를 괴롭히는 세상의 온갖 소음을 음소거하고 수치와 후회에서 해방되는 길이다.

2. 식도락 여행
인천에서 프랑크푸르트까지는 12시간이 걸렸다. 비행기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는 시간이 정말 괴로웠다. 이 곤혹스러움을 감수하고 다시 비행기에 타고 싶다면 기내식 때문일 것이다. 첫 번째 식사는 버팔로 모짜렐라 치즈와 토마토, 구운 닭고기와 그레몰라타, 설탕에 졸인 사과와 양파 감자 퓨레, 머랭을 곁들인 쉬폰 케이크였다.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부드러운 식감의 요리들로 수월한 소화를 고려한 것 같았다. 두 번째 식사는 새우와 절인 레몬, 올리브가 어우러진 로메인 샐러드와 구운가지, 흰콩, 훈제 삼겹살을 곁들인 토마토 소스 펜네 파스타와 과일이었다. 첫 번째 식사에 비해 가벼워서 좋았다. 음료수는 진저엘이라는 탄산음료를 먹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생강이 가미되어 있어 세 번이나 먹었다. 위스키를 시키니까 짭짤한 견과류 스낵을 주었는데 그것마저 맛있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의 첫 끼는 독일 전통 음식이었다. 독일식 족발요리인 슈바인학센과 신 백김치 맛이 나는 양배추 요리 사워크라우트가 인상적이었다. 아펠바인이라는 사과와인도 정말 독특한 향을 가진 술이었다. 사과 맛이라기보다는 짭쪼름한 끝맛이 났다.
다음날 아침은 호텔 조식이었는데 다양한 종류의 소세지와 햄, 치즈를 맛볼 수 있었다. 둥그렇고 겉표면에 흰 가루가 있는 치즈들을 케이크 조각 모양으로 썰어서 덜어 먹는 재미가 있었다. 치즈의 풍미가 정말 다양해서 다른 종류의 치즈를 먹어보는데 시간가는 줄 몰랐다. 훈제연어도 맛이 있었고 생자두를 곁들인 요거트도 상큼했다.
점심은 기차에서 트래픽스낵이라는 체인점 샌드위치를 먹었다. 나는 매콤한 고기샌드위치를 먹고 선우는 치즈가 든 야채샌드위치를 선택했는데 한 입 먹어보니 야채샌드위치가 더 맛있는 것 같아서 선택을 후회했다. 샌드위치를 싼 종이에는 짐보따리를 묶은 막대기를 어깨에 걸친 소년의 실루엣이 인쇄되어 있었다. 어렸을 때 보았던 외국만화가 떠올라 재밌었다. 저녁은 숙소에서 독일맥주와 피자, 붉은 소스로 조리된 고기와 튀긴 감자요리, 토마토와 청포도 등의 과일을 먹었다. 피자와 맥주는 역시 환상의 궁합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어제 먹다 남은 자두와 토마토, 수민이가 우리 방에 두고간 초코칩 쿠키와 성진 담당자님이 고르신 감자칩을 먹었다. 발사믹 소스가 가미된 감자칩이었는데 새콤하면서 짭짤해서 정말 맛있었다. 아침밥으로 뭘 먹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 걸 보니 숙소에서 간단히 먹은 간식 만큼 인상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점심에는 번역가 노선정 선생님과 다와다요코와 함께 근사한 식당에서 소시지 요리와 샐러드를 먹었다. 샐러드와 함께 나온 치즈를 얇게 펴서 튀긴 것 같은 과자가 맛있었다. 염소젖치즈도 특유의 향과 짭짤한 맛이 어우러져 인상적이었다.
파리에 도착했을 때는 너무 늦은 시각이라 물과 요거트, 자두, 샐러드와 케밥을 장근명 담당자님과 희태오빠가 사서 호텔방에 갖다주셨다. 야식을 먹는 기분이 나서 더 신났다. 닭고기 밑에 양념된 밥이 깔려있었는데 다음날 수민이는 닭고기만 먹고 밥을 먹지 못했다고 해서 안타까웠다.
아침은 카페에서 간단하게 커피와 크로와상을 먹었다. 갓 구어낸 크로와상은 찢을 때 손이 화끈할 정도로 뜨거웠고 빵 냄새가 고소했다. 에펠탑 앞에서 선우와 함께 사먹은 라즈베리와 초콜렛 마카롱이 정말 환상적이었다. 손바닥 만한 마카롱은 필링이 정말 풍부했다. 선우가 라즈베리를 먹고 나는 초콜렛 마카롱을 먹었는데 선우의 것을 한 입 먹어보고 초콜렛 마카롱을 고른 것이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옹 호텔에 짐을 풀고 호텔 근처에서 먹은 피자도 훌륭했다. 내가 먹은 한국의 마가리타 피자 맛인 이 피자집의 이름을 딴 비토 피자도 맛있었지만 선우가 먹은 연어 피자도 충격적일 정도로 맛있었다. 솔직히 비토 피자를 선택한 것을 후회했다. 연어와 피자의 조합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사모아가 연어란 것만 알았어도 이 피자를 시켰을 텐데 비통했다.
다음날 호텔을 옮기고 왼 발이 아파서 혼자 호텔 방에 반나절을 있었다. 담당자님들께 괜찮다고는 했지만 배가 고파서 우리가 묵는 층에 있는 자판기에서 모든 종류의 초코바와 감자칩을 섭렵했다. 초콜렛 과자를 너무 많이 먹어서 목구멍이 쓰릴 지경이었만 맛있어서 멈출 수가 없었고 나는 유로를 다 쓴 후에야 자판기 앞을 떠날 수 있었다. 내게 시계가 없어서 정확한 시간의 흐름은 알 수 없었지만 불과 두세시간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장근명 담당자님과 성진 담당자님이 호텔로 초밥 도시락을 가지고 오셔서 오후에 있는 리옹대학교 일정에 참여할 수 있겠냐고 했는데 발은 계속 아팠지만 밥을 먹기 위해서 갈 수 있다고 했다. 우리의 작품소개와 간단한 질의응답 후에 다과회를 가졌다. 짭짤한 초록색 내용물이 든 롤빵이 맛있었다. 저녁에는 한국식당에 갔다. 이번 여행에서 한국식당을 두 번 갔는데 첫 번째 간 곳에서는 떡볶이를 먹었고 이곳에서는 김치볶음밥을 먹었다. 둘 다 너무 달아서 한국 본연의 매콤함을 느낄 수 없었다. 매운 맛을 덜 본 어정쩡한 뒷맛이 불만족스러웠다. 첫 번째 식당에서 유미가 된장찌개와 밥을 덜어주었었는데 그게 유럽에서 맛본 가장 훌륭한 한국음식이었던 것 같다. 밤에는 호선언니와 선우가 술을 사줬다. 샴페인과 맥주도 맛있었지만 까만색 감자칩이 더 맛있었다.
리옹에서 하이라이트는 리옹구시가지에서 먹은 라자냐였다. 사실 나는 레드와인 소세지 요리를 먹었는데 유미와 선우와 수민이가 라자냐를 남겨서 다 내가 먹게 되었다. 아주 리치하고 짜고 맛있었다. 마지막에 나온 초콜렛 무스도 맛있었는데 희태오빠가 더 이상 느끼한 것을 못 먹겠다고 해서 내 차지가 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런던이 이번 여행에서 제일 재미있는 도시였다. 런던은 낮술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 활력이 넘치고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도 밝았다. 피카딜리 서커스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빅맥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펍에서 마신 기네스 맥주와 유미가 마신 블루문이라는 맥주도 맛있었다. 시원한 과일향이 나는 맥주였는데 달이 그려진 푸른 라벨이 예뻐서 유미와 잘 어울리는 맥주라고 생각했다. 저녁에도 피카딜리 서커스에서 피쉬 앤 칩스를 먹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행복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바삭하게 튀겨진 신선한 흰살 생선은 여행의 피로를 녹이기에 충분했다. 런던의 디저트들도 기억에 남는다. 노팅힐에서 호선언니가 사준 딸기와 생크림을 올리고 초코시럽을 드리즐한 와플과 굉장히 화한 맛의 민트초코 아이스크림, 선우와 피카딜리 서커스에서 먹은 레드벨벳 컵케이크와 생강쿠키도 잊을 수 없는 맛이다. 사 먹었던 음식도 맛있었지만 수민이가 가져온 생초콜릿과 숙소에서 유미가 끓여준 신라면도 한국에서 먹을 때 보다 맛있었다. 버킹엄 궁전에서 근위병 교대식을 볼 때도 리젠트 가든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 때도 내 손에는 수민이의 초콜렛 봉지가 들려있었다. 무궁무진한 고급 간식을 제공해준 수민이에게 고맙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나는 양식을 시켰고, 유미는 한식을 시켰다. 유미가 비빔밥을 다 먹지 못해서 내가 먹었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고추장을 먹으니 혀가 제 기능을 하는 것 같아서 치약처럼 생긴 고추장 튜브를 입안에 짜넣고 싶었지만 물을 많이 마셔야 할 것 같아서 참았다. 집에서도 세끼를 다 챙겨먹지 않는데 매끼니 특별한 메뉴를 선정하고 한 순간도 배고프지 않게 해주신 장근명 담당자님께 감사함을 전한다.

3. 비둘기
독일 비둘기들은 독일만큼이나 위풍당당하고 호기로웠다. 독일에서는 많은 까마귀들을 볼 수 있었는데 독일 비둘기들은 까마귀처럼 날개를 펼치고 바람을 타고 고공비행을 한다. 몸피가 큰 편이었고 군인식으로 절도 있는 비행동작이 일품이었다. 공군 소속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비행훈련이 잘되어 있었다. 베를린 장벽에서 본 비둘기들이 가장 위엄있었으며 그 비둘기들은 뒤뚱뒤뚱 걸으면서도 똥을 아무데나 싸지 않았다. 베를린 궁의 비둘기들도 인상적이었다. 검게 부식된 베를린 궁 앞에서 본 비둘기는 청록색으로 번쩍이는 목 깃을 다듬고 있었는데 발이 유난히 붉은색이었다.
프랑스 비둘기들은 서울 비둘기에 견줄 만큼 굉장히 비만했다. 구체에 가까운 몸집을 자랑하고 있었고 쓰레기들을 헤쳐 먹는 비둘기다운 더러움이 단연 돋보였다. 쓰레기를 잘 먹는 것은 도시 비둘기의 가장 본질적인 정신이다. 프랑스 비둘기들은 꽁무니를 쫓아 구구구거리며 몰아도 절대로 날지 않았는데 비행을 포기한 귀찮은 태도에서 동질감이 들었다. 프랑스 비둘기들의 특기는 저공비행이었다. 날개로 사람들의 이마를 스치기를 작정이라도 한 듯이 낮게 날았다.
영국 비둘기들은 날렵하고 세련된 체형이 인상적이었다. 땅위에서 걷는 속도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트랙 위를 달리는 미니카 정도의 속력이다. 런던 비둘기들은 동물도감에 나오는 비둘기처럼 머리에서 등을 타고 내려오는 선이 보기 좋은 곡선을 이루고 있어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영국의 기차역에는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표지판이 자주 눈에 띄었다. 정부차원의 이런 비둘기 비만 관리가 영국의 아름다운 비둘기를 만드는 데 일등공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런던은 비둘기 못지않게 갈매기가 많은 도시였다. 리젠트 파크에서는 비둘기가 밀집한 구역과 갈매기 떼가 차지한 구역이 있었다. 조깅하는 사람들을 배경으로 날아오르는 흰 새 떼들은 비둘기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유럽의 비둘기들은 역사 안을 드나들 만큼 자유분방하다. 심지어 카페에도 곧잘 걸어 들어왔고 그 모습이 나에게 썩 달갑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은 비둘기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고 태연하게 마시던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었다.
프랑크푸르트, 베를린, 파리, 리옹, 런던 다섯 도시에는 어김없이 비둘기가 있었고 한국에 돌아와 가장 먼저 본 새 역시 비둘기였다. 그동안 나는 비둘기에 대해 너무 억압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죄 없는 비둘기를 경멸하고 모욕해왔다. 비둘기는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으며 비둘기는 가장 親도시적인 새다. 비둘기를 증오할 때 도시는 지옥이었지만 비둘기에 대한 태도를 우호적으로 전환하니 비지옥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늘 비둘기를 더럽다고 욕해왔지만 사실 나는 여행내내 잘 씻지도 않았고 내 정신은 비둘기보다 더럽다. 비둘기의 정신은 나보다 훨씬 단순하고 깨끗하다. 비둘기들은 도시에서의 삶을 무연하게 수행중이다. 도시를 견디며 미치지 않고 잘 살아가고 있고 인간처럼 자살을 하지도 않는다.
리옹에서 차에 깔려죽은 비둘기를 봤다. 아스팔트에 갈린 검은 비둘기시체는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비둘기 시체를 보자마자 자동적으로 욕이 나왔다. 인간의 시체를 보고서는 욕이 나오지 않을 텐데 가엾은 비둘기의 시체를 보고서는 왜 욕이 나오나. 내 정신이 썩었기 때문이다. 비둘기의 목숨을 인간의 목숨보다 천하게 여기는 내 뼈에 박힌 사고와 관념이 증오스럽다. 다 똑같은 비둘기를 우화적으로 보고 있는 내 시각 또한 폭력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단 한 순간도 내 정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내가 지금까지 본것, 읽은 것, 들은 것에 의해 뇌에 건설된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고 키치한 이 지옥적인 도시는 모든 도시의 날이미지를 몽땅 내가 본 사진 속으로, 영화 속으로, 책 속으로, 문화 속으로 우겨넣는다. 비둘기는 비둘기다. 비둘기는 비둘기일 뿐이다. 비둘기는 비둘기가 아니어도 비둘기다. 비둘기이기 때문이다.
 
4. 감사드릴 분
고생하신 장근명, 김성진 담당자님께 감사드린다.
힘들 때마다 의지했던 호선언니가 보고 싶다.
  
5. 풀리지 않은 다섯가지 미스테리
베를린행 열차에서 낙오됐을 때 접근한 흑형의 의도
사라진 수민이의 케밥
게트윅 공항 입국심사 때 보여준 수민이의 혼란 스킬 
희태오빠는 왜 운전석에 탔는가
런던 차이나타운 성인용품 가게에서 구하고 있던 모델과 철창의 정체 




기수별 보기

번호 기 행 문 글쓴이 조회
90 베를린에 다녀왔습니다 ^_^ 김수진 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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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도시와 도시 사이를 밤으로 넘나들며 - 문학, 여행, 사유에 관한 일곱 편의 메일로 된 열차 이원기 193
86 겨울 방학 노경희 210
85 아직도 눈을 감으면 최주연 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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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어느새부턴가 어느샌가부터 김나경 908
82 지워지지 않을 것들 남우비 876
81 바이러스 갱단의 유쾌한 언어 사전 김소휘 3356
80 사랑과 혁명 박하빈 4333
79 성(Castle) 이재빈 3173
78 없어진 사람들의 도시와 사람들의 겉옷들 남의현 2949
77 고마움. 촛불만큼. 노래만큼. 불가사의만큼. 이자켓 3429
76 LOVE NEVER FAILS 김연덕 3717
75 그리고, 남겨질 것들 박소연 3137
74 바나나의 시간 이다은 3462
73 영국 기록 일지 장은서 3508
72 우리는 영원히 살아갈 거야 박서영 4811
71 또 가는 밤 서재진 3801
70 나의 언어로, 어디든, 더 멀리 이소윤 3970
69 보험을 든다면 역시 교보생명을 드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며 쓴 의리 있는 기행문 전여울 4153
68 우리의 우리에게 최현비 3982
67 이제 없는 당신들에게 박규민 4864
66 살아있다는 서러움 양그림 4379
65 15회 해외문학기행문 육호수 4993
64 멀리, 그리고 처음 떠나보는, 정희정 4801
63 문학에 대해 하루종일 이야기하고 싶어 한설 5171
62 어떤 느낌 박서혜 7628
61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 박소희 7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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