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소식 및 공지사항

제23회 대산문학상 예심 결과 및 심사평 발표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15.09.10|조회 : 9065

국내 최대 규모의 종합문학상 '제23회 대산문학상'의 시, 소설 부문 예심 결과와 심사평을 싣습니다.
한국문학을 사랑하는 많은 분들의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 시 부문(총 10편)
  - 심사위원 : 김선우, 박정대, 오형엽

작품 작가 출판사
귀신 강 정 문학동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거울이다 고형렬 창비
밤의 입국 심사 김경미 문학과지성사
에코의 초상 김행숙 문학과지성사
마흔두 개의 초록 마종기 문학과지성사
문정희 민음사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손택수 창비
착한 애인은 없다네 이창기 창비
은는이가 정끝별 문학과지성사
힐베르트 고양이 제로 함기석 민음사


▶ 소설 부문(총 8편)
  - 심사위원 : 김동식, 김숨, 심진경, 이기호

작품 작가 출판사
토우의 집 권여선 자음과모음
역사 속의 나그네(전6권) 복거일 문학과지성사
나쁜 봄 심상대 문학과지성사
옛날 옛적에 자객의 칼날은 오현종 문학동네
저녁이 깊다 이혜경 문학과지성사
한국이 싫어서 장강명 민음사
선의 법칙 편혜영 문학동네
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창비


예심 심사평
<시 부문>
예년과 마찬가지로 2014년 8월부터 2015년 7월까지 출간된 시집을 점검했다. 한 해 동안 출간된 엄청난 양의 시집을 확인하며 개인적으로 든 소회는 복잡하다. 이렇게 많은 시집이 출간되는데 왜 시는 죽어간다고 아우성이고 독자는 급속히 줄어드는 걸까. 시집 독자가 멸종위기종 동식물만큼 희귀한 시대임에도 여전히 이렇게 많은 시집이 출간되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시를 쓰는 것이 시의 향유를 전제한 것이라면 매년 이렇게 시집을 쏟아내는 시인들만 시집을 산다 해도 시집 초판은 너끈히 소화되겠다 싶기도 하다. 하지만 시집 출간과 판매 사이의 불균형은 매년 심각해지고 있다. 이제 초판 500부를 찍는다고도 하고, 그마저 소화되지 않는다고 아우성 아닌가. 독자 없는 문학은 불우하다. 지극한 소수라 할지라도 독자와 함께 가야한다. 시인은, 시집은, 어떻게 ‘끝내’ 살아남을 것인가.
서두가 길어진 이유는, 한 해 동안 출간된 ‘너무 많은 시집’을 훑어가며 느낀 당혹감 때문이다. 출간된 시집은 너무 많은데 정작 시집 수준은 하향평준화 기세가 심각하다. 더 신랄하게 이야기한다면 ‘시’라는 이름으로 출간되기에 미흡한 책들이 수두룩하다. 이유가 무엇일까. 복합적이겠으나 한 단면으로 ‘서울 지하철 시 사업’ 이야기를 들고 싶다. 사유와 표현 모두 너무나 진부하고 낡아서 도저히 시라고 할 수 없는 문장들이 행갈이만 하면 다 시인 것처럼 버젓이 스크린도어에 걸리기 일쑤인 이 공공사업이 혹시는 4천만 인구가 유동하는 대도시에서 시에 대한 하향평준화의 편견과 왜곡을 조장하는데 일조하고 있지는 않은가. 공공사업에서 문학을, 특히나 언어로 지어지는 가장 민감한 전위 행위인 시를 사용할 때는 매우 심사숙고해야 한다. 치밀하게 검증하여 엄선하지 않고 대충 유통되는 시 아닌 시들은 잠재독자를 개발하기는커녕 사장시키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예심평 관례상 언급되지 않지만 이런 이야기를 한번쯤 환기해야 할 때인 듯싶었다. 1차 심사 과정은 이처럼 시집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책들을 골라내는 작업부터 포함하기 때문이다. 천권 대비 백 권 정도가 ‘시집’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와도 부끄럽지 않은 비율이다. 그중에서 다시 절반이 비교적 쉽게 추려진다. 이제부터가 진검승부이니 이때부터 심사는 치열해진다. 모든 문학심사가 그렇듯이 사유와 표현 모두에서의 개성, 새로움, 깊이를 아우른 성취가 종합적 기준이다. 2차 심사에 올려진 30여권을 놓고 심사자들 간의 대화와 토론이 오갔고 이중 20여권이 남았다.
올해 예심은 예년과 다른 의미에서 얼마간 난감했다. 최종 숙독을 거듭한 20여권을 앞에 놓고 심사자들이 공통으로 느낀 난감함은 각각 시인들의 시력이 훌륭함에도 불구하고 각 시인이 그의 전작들에 비해 뛰어난 시집을 내놓지는 못했다는 안타까움 때문이다. 평균이상의 시집이지만 그 시인이라면 충분히 보여줄 수 있으리라 기대 가능한 시적성취에는 미치지 못하는 참으로 애매한 지점에서 20여권이 각축을 벌였다. 최종 숙독과 숙고에 들어갔고, 3차 심사에서 10권을 본심에 올렸다. 그동안 한국시사에 한 개성으로 자리매김한 뛰어난 시인들의 시력에 대한 믿음에 많은 부분 기댈 수밖에 없었던 예심이었다. 그간 시단의 중심에서 논의된 바 없으나 한국시 전체에선 새로운 개성이자 자신만의 실험을 집요하게 지속하는 시인에 대한 응원도 포함되었다.

<소설 부문>
올해 대산문학상 소설 부문 예심은 다른 해와 마찬가지로 총 세 번에 걸쳐 진행되었다. 그 결과 다음 여덟 편의 장편소설이 본심의 심사 대상으로 선정되었다. 권여선, 『토우의 집』, 복거일, 『역사 속의 나그네』, 심상대, 『나쁜 봄』, 오현종, 『옛날 옛적에 자객의 칼날은』, 이혜경, 『저녁이 깊다』, 장강명, 『한국이 싫어서』, 편혜영, 『선의 법칙』, 황정은, 『계속해보겠습니다.』(가나다순)
아쉽게도 이번 심사 대상에 포함된(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출간된) 장편소설은 일단 양적으로 예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축된 모습이었다. 종수(種數)의 다양성 또한 예년만 못했다. 몇몇 장르 소설들이 눈에 띄었지만 새로운 문학적 영역을 확산시키기보다는 오히려 문단 안에서 익숙한 문학성 규범에 포섭되어 오히려 장르 소설의 가능성을 제한한다는 인상을 주었다. 그렇다고 해서 비(非)장르, 비(非)대중, 비(非)상업 소설, 다른 말로 순문학적 장편소설 작업이 그렇게 인상적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예심위원들은 문학 작업에 응당 요구되는 영원한 혁신과 변화, 젊음이란 이제 한국소설에서 단지 구호의 차원에만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고, 그 점이 한국소설의 위축과 침체와 관련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최근에 문단 안팎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국소설을 둘러싼 표절 논란 또한 이런 맥락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표절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동안 간헐적으로 있어 왔던 표절 논의가 왜 문단 안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지지 못했느냐 하는 것이다. 한국문학사에서 표절은 중요한 문학적 토픽이었던 적이 없었다. 왜 그럴까? 작가에게 창조성이란 어떤 점에서는 기성 작품의 모방이나 변주를 통해서 이루어지기도 하기 때문에, 창작자는 늘 표절 가능성에 대한 고민, 혹은 ‘영향에 대한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표절 문제는 창조적 작가에게는, 아니 창조적 작가일수록 더욱 예민하게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그러니 표절이란 함구해야 할 금기어가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문학의 창조성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더욱 적극적으로 탐구되어야 할 주제인 것이다. 우리 예심위원들은 아직 끝나지 않은, 아니 이제 막 시작된 ‘이’ 문제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문제가 우리에게 심리적 압박감과 부담감만을 안겨준 것은 아니다. 심사 과정에서 예심위원들은 이러한 위기가 한국문학의 체질 개선을 위한 하나의 계기일 수 있다는데 동의했다. 좋은 문학작품의 판단기준으로 작용하는 ‘문학성’은 단순히 실체 없이 정체된 모호한 관념이 아니라 진정한 변화와 혁신을 가능케 하는 움직이는 개념이 되어야 한다. 비록 모두가 합의한 것은 아니지만 이번 예심의 결과는 예심위원들의 이러한 고민과 문제의식이 어떤 방식으로건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예심위원들이 고민했던 내용 중 하나를 더 고백하는 것으로 이 지난한 예심평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복거일의 『역사 속의 나그네』에 관한 것이다. 대산문학상 규정에 따르면 대하소설은 완간된 시점을 기준으로 그 해 심사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대하소설이 대산문학상 본심에 오른 적은 없었다. 게다가 이 소설은 1991년에 세 권이 발간된 후 약 25년이 지난 올해에야 나머지 세 권이 발간되었다. 그 때문에 애초에 이 작품이 제기했던 문제의식이나 장르적 자의식이 다소 퇴색한 것이 아닌가 하는 논의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이유들로 예심위원들은 『역사 속의 나그네』에 관한 여러 얘기들을 나누었으나 결론적으로 우리는 이 작품이 지닌 문학적 내공을 외면하기 어려워 본심 대상작으로 선정하였다. 혜량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