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푸른 하늘 아래

페르난두 페소아의 『리스본: 관광객이 꼭 봐야할 것들』

삶이란… “괜찮아요. 다 괜찮아”

어지러운 현실의 아득한 출구 글 문광훈

새로운 환경 속의 문학과 독자 ①세계의 작가들, 문학의 미래를 묻다 ②문학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시각과 상상력을 펼치는 장 ③세계문학의 거장들, 한국문학과 만나다 ④2017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참가하는 세계의 작가들

드라마 속 우리 고전 활용법

①구름처럼, 낙조처럼 ②내 기억 속의 유일한 할머니 ③떨리는 손으로 마지막까지 쓴 ‘통일’과 ‘민주화’ ④두 아버지가 남긴 비의(秘意)

전쟁터 죽음보다 두려운 녹슬어가는 삶 글

피폐했던 젊은 날 가슴으로 쓴 시

에릭 블레어의 고립 그리고 독선

선진문물의 수용 무대, 근대 박람회

내를 건너 숲으로 고개를 넘어 마을로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다들 웃고 있지만 울고 있다

‘시천’의 해오라기

통찰력에 바탕한 법고창신(法古創新)의 글쓰기

①고비에 와서,별이 보인다 ②겨울의 말

①하미 연꽃 ②블라인드 케이브 카라신

피어나는 말

첫번째｜정치적인 것과 예술적인 것 두번째｜슬픔 세 번째｜어디로 가는 배냐 황포돛대야 네 번째｜나무가 된 시인

①진정성, 새로운 상상력 그리고 자신만의 언어 ②범죄소설 바깥을 쓰는 작가 ③이제 없는 당신들에게

새로운 균형의 방향에 대하여

‘시’와 ‘사랑’으로 하는 혁명을 번역하기

원작의 뉘앙스를 살리다

인간 모차르트와 음악가 모차르트의 인물화

대산창작기금,외국문학 번역지원,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

제1강, 호사카 유지 교수의 ‘독도, 1500년의 역사’ 개최

창작 후기

새로운 균형의 방향에 대하여

글 김연희 ㅣ 소설가. 1979년생
소설 『너의 봄은 맛있니』 등

새로운 균형의 방향에
대하여

소설집 『너의 봄은 맛있니』

글 김연희 ㅣ 소설가. 1979년생
소설 『너의 봄은 맛있니』 등

십여 년 전의 나는 나보다 다른 사람에게 더 신경을 썼다. 타인의 입에서 언급되는 영화를 찾아서 보고, 그들이 입는 옷을 사고, 가는 곳에 갔다. 또한, 세상이 쏟아내는 새로운 것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새로운 장소에 가고, 새로운 것들을 사들이고, 새로운 메뉴를 먹었다. 나는 무엇이든 시도하려고 했다. 어린아이처럼 모든 걸 다체험해 보아야 직성이 풀렸다.
책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 내가 읽는 책을 살펴보고는 계통이 없는 잡식성이라고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재미있다고 하면 무조건 카트에 담았다. 돈에 한계가 있으니 다 사지는 못하지만, 되도록 사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가리지 않고 읽었다. 이야기를 따라가는 일은 언제나 흥미로웠고, 새로운 인문학적 사실을 흡수하는 일은 기뻤다.
소설을 쓸 때에도 다르지 않았다. 나는 떠오르는 생각들을 빨리 옮기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열 장을 뚝딱뚝딱 금방 썼다. 거칠 게 없었다. 합평을 듣고 수정을 하는 일도 신나기만 했다. 피드백을 받는 일이 달갑지는 않지만, 내 소설에 도움이 된다면 받아들여야 했다.
소설은 고칠수록 나아졌다. 나는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고쳤다. 소설과 함께 하는 시간이 행복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변했다. 아마도 장편을 쓰려고 시도하면서부터일 것이었다. 장편의 얼개는 대강 나와 있었다. 쓰기만 하면 되는데 밀고 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장편과 단편은 달랐다. 단편에 익숙해진 탓인지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서너 번 쓰고 뒤엎자 초조해졌다. 좀 더 집중해야 할 것같았다. 나는 주변을 정리했다. 한곳에 오래 앉아있기 위해 노력했다.
집중이 필요했다. 이상하게도 집중을 하다 보니 새로운 것에 대한 흥미가 떨어졌다. 아니, 새로운게 없어져 버린 것 같았다. 세상살이에 흥미를 잃은 건지도 몰랐다. 모두 다 그저 그랬다. 바다 건너먼 곳으로 여행을 가면 좀 나을 것 같은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기를 낳았다. 나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육아라는 행복한 감옥에 갇혔다. 불행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지쳐갔다.
더구나 책 읽을 시간이 줄어들었다. 절대적인 시간이 줄어들어서 이전처럼 여러 권의 책을 읽을
수 없었다. 적은 시간의 독서로 만족을 얻으려면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책을 읽어야 했다. 나는 신경 써서 책을 골랐다. 좋아하는 작가를 선별하고, 새로 나온 책의 목차를 꼼꼼히 살폈다. 그렇게 고른 책들은 나를 위로해 주었다. 육체의 여행은 불가능 하지만, 정신의 여행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나의 첫 소설집은 위의 두 시기가 교차하는 중에 나왔다. 솔직히 나는 이 소설집이 세상에 나오
게 되리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등단하고 칠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나는 수없이 좌절하고, 눈물을 흘렸다. 갓 등단했을 때의 한껏 부푼 가슴은 앙상하게 뼈대만 남아 있었다. 마르고 여위어서 이제는 회생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들 즈음 책을 낼 수 있었다.
『너의 봄은 맛있니』에는 총 여덟 편의 소설이 실려 있었다. 에너지가 폭발하던 시절의 내가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나는 즐거웠다. 지금과는 다른 즐거움이었다. 차분하고 고요한 즐거움이 아니라 질주하며 들끓는 즐거움. 여고생의 웃음소리 같은 즐거움이었다. 그때의 내가지금의 나를 본다면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의 나를 설득하기는 힘들겠지만, 지금도 나쁘지 않았다. 나는 계획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경제적인 삶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자질구레한 집안일과 커가는 아이에게 소모되는 에너지를 제외하고 모든 걸 독서와 집필에 바쳤다. 제대로 균형을 잡는 게 중요했다. 아직은 처음이어서 비틀거리고 실수를 하지만, 언젠가는 매끄럽게 조율이 될 거라는 기대를 품고 있었다.
변화하는 것이 인생인지, 소설인지 알 수 없었다. 두 개의 바퀴를 동시에 굴리는 것과 비슷했다.
크기와 재질이 다른 두 개의 바퀴를 굴리며 달려가는 방법을 이제야 조금쯤 알게 된 것 같았다. 내가 아는 게 맞는지 틀리는지 알 수 없지만, 그건 누가 확인해 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다만,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바라보며 달릴 뿐.

※ 소설집 『너의 봄은 맛있니』는 재단의 대산창작기금을 받아 자음과모음에서 2016년에 출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