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대산문화 표지

푸른 하늘 아래

페르난두 페소아의 『리스본: 관광객이 꼭 봐야할 것들』

삶이란… “괜찮아요. 다 괜찮아”

어지러운 현실의 아득한 출구 글 문광훈

새로운 환경 속의 문학과 독자 ①세계의 작가들, 문학의 미래를 묻다 ②문학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시각과 상상력을 펼치는 장 ③세계문학의 거장들, 한국문학과 만나다 ④2017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참가하는 세계의 작가들

드라마 속 우리 고전 활용법

①구름처럼, 낙조처럼 ②내 기억 속의 유일한 할머니 ③떨리는 손으로 마지막까지 쓴 ‘통일’과 ‘민주화’ ④두 아버지가 남긴 비의(秘意)

전쟁터 죽음보다 두려운 녹슬어가는 삶 글

피폐했던 젊은 날 가슴으로 쓴 시

에릭 블레어의 고립 그리고 독선

선진문물의 수용 무대, 근대 박람회

내를 건너 숲으로 고개를 넘어 마을로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다들 웃고 있지만 울고 있다

‘시천’의 해오라기

통찰력에 바탕한 법고창신(法古創新)의 글쓰기

①고비에 와서,별이 보인다 ②겨울의 말

①하미 연꽃 ②블라인드 케이브 카라신

피어나는 말

첫번째|정치적인 것과 예술적인 것 두번째|슬픔 세 번째|어디로 가는 배냐 황포돛대야 네 번째|나무가 된 시인

그래서 어떻단 말인가

송어가 사는 깊은 골짜기로 가는 길

영화와 소설, 서로 바꾸어 꿈꾸기

근대 비평사의 대가들을 한자리에

새싹들을 찬찬히 들여다봐야겠다

①진정성, 새로운 상상력 그리고 자신만의 언어 ②범죄소설 바깥을 쓰는 작가 ③이제 없는 당신들에게

새로운 균형의 방향에 대하여

‘시’와 ‘사랑’으로 하는 혁명을 번역하기

원작의 뉘앙스를 살리다

인간 모차르트와 음악가 모차르트의 인물화

대산창작기금,외국문학 번역지원,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

제1강, 호사카 유지 교수의 ‘독도, 1500년의 역사’ 개최

가상인터뷰

그래서 어떻단 말인가

글 이수명 ㅣ 시인. 1965년생
시집 『새로운 오독이 거리를 메웠다』 『왜가리는 왜가리 놀이를 한다』 『붉은 담장의 커브』 『고양이 비디오를 보는 고양이』
『언제나 너무 많은 비들』 『마치』, 연구서 『김구용과 한국현대시』, 시론집 『횡단』, 비평집 『공습의 시대』 등
앤디 워홀(Andy Warhol) ㅣ 미국 화가, 영화제작자. 1928~1987년
작품 <캠벨 수프 Campbell's soup> <두 개의 마릴린 The two Marilyns> <재키 Jackie> <마오 Mao> <자화상 Self-Portrait> 등,
저서 『1970년대의 조망』 『앤디 워홀의 철학』, 잡지 《인터뷰》 창간


그래서 어떻단 말인가

- 화가 앤디 워홀과의 인터뷰



▲ 앤디 워홀    

이 글은 앤디 워홀이 쓴 『앤디 워홀의 철학(The Philosophy of Andy

Warhol: from A to B and back again)』(1975; 김정신 옮김, 미메시스, 2007)
을 바탕으로 워홀과의 가상 인터뷰를 진행한 것이다. 글 전체는 두 부분으
로 얽혀 있는데 우선 인용 부호를 사용하여 책 속의 워홀의 글을 그대로 수
록함으로써 그의 생각과 상상에 가감 없이 다가가고자 했다. 괄호 안에 페
이지를 표시했다. 인용 부호 외의 나머지 글은 그의 삶과 사상에 근간하여
워홀과의 대화를 임의로 구성한 것이다.




오늘의 인터뷰가 기대된다. 당신은 인터뷰를 수없이 많이 했고 질문과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면서, 질문 밖으로도 나아가 당신이 하고픈 말들을 하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질문이라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앤디 워홀 인터뷰는 재미있다. 내가 인터뷰를 즐기고 《인터뷰》에 많이 나온 것은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는 데 도움을 주었다. 거리에서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내게 말을 걸고 인사를 하는 것이, 어떤 땐 나의 머리 염색 색깔이 좋았다든가 하는 말을 듣는 것이 그날의 지루함을 덜어 준다. 내가 유명하다는 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을 생각하지 않게 해준다.

당신은 여러 곳에서 생각이 별로 필요하지 않다는 뉘앙스로 이야기한다. 생각의 힘이나 권능에 대해 여전히차별적 강조가 주어지는 시대에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은 일인가? 왜 생각이 필요 없는지 당신의 삶과 예술에서 그 이유를 듣고 싶다.
앤디 워홀 내 방에 텔레비전이 네 대 있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장면에서 장면으로 이동만 하면 된다.
뭔가를 생각해 내는 것은 수고스러운 일이지만 그것이 이미 존재하는 것보다 더 나은 건지는 모르겠다. 나는 언젠가는 원룸에서 살고 싶고 원룸 찬양자다. 모든 것이 한 곳에 모여 있고 내 팔 닿는 곳 안에 있는 것은 그것에 다가가고 찾는 시간을 단축해 준다. 나는 생각에 붙들리는 것을 싫어한다. 사실 나는 생각에 아주 미숙하다. 그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만일 당신이 그림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좋은 그림이다>라고 말한다. 당신이 결정하고 선택하는 순간 그림은 실패하고 만다. 당신이 더 많이 결정할수록 그림은 더 좋지 않게 나온다. 어떤 이들은 추상적으로 그린다. 그들은 앉아서 그림 생각을 한다. 그들의 생각이 스스로 무언가 하고 있다고 느끼도록 만들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생각을 하고 있어도 내가 무언가를 한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171)

생산, 창의, 생각, 이런 것들에 당신이 공감하지 않는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다. 생각이 당신을 추동하는 것이 아니라면 당신은 삶이나 예술에서 무엇을 중시하는가? 아니, 중시한다는 말이 당신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당신을 촉발시키는 것? 발동을 걸리게 하는 것? 아무튼 당신에게 흥미를 느끼게 하는 것이 있다면 말해 달라.
앤디 워홀 사람들은 모두 다르게 생겼고, 각기 다른 것에 발동이 걸린다. 그런 차이가 있을 뿐이다.
“나는 불을 끄고 자러 갈 때 발동이 걸린다.”(100) 자 이제는 아무 할 일도 없군, 결정할 것도 없고 그냥 누우면 돼, 하는 순간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방 안의 물건들을 갑자기 새로 배치할 수 있을 것 같다. 함부로 내 몸이 여기저기를 가로지르는 것에 쾌감을 느낀다. 무얼 해야 할 필요가 없는 순간이 좋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모르나 “나는 늘 누구나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일, 포기한 일에 아주 재미있는 일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이 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재활용 사업과 비슷하다. 나는 항상 미완의 일에는 유머가 들어 있다고 생각했다.”(112)

유머라는 말이 재밌게 들린다. 어쩌면 유머가 당신의 삶과 예술의 전략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당신이 캠벨수프 깡통이나 브릴로 상자를 쌓아 올리는 것이 예술 행위라기보다는 일종의 유머로 느껴진다. 그것은 왜?라는 질문을 멈추게 하는 것이고 오랜 예술로부터 해리시키는 행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유머가 정신적 붙들림의 반대라면, 확실히 그렇다. 당신은 쓸모없고 포기된 일, 미완의 어떤 것에 들어 있는 농담을 즐기는 것같다. 당신은 평소에도 유머러스한 사람인가?

앤디 워홀 사람들이 나에 대해 하는 말이 뒤죽박죽인데 그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여럿이 모여 있을 때 그때마다 다른 내가 나타나는 것 같다. 경우에 잘 들어맞지도 않는다. “나는 안 맞는 장소에 맞는 물건으로, 그리고 맞는 장소에 안 맞는 물건으로 있기를 좋아한다. 당신이 이 둘 중 하나가 될 때, 사람들은 당신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거나 침을 뱉거나 당신에 관해 나쁜 기사를 쓰거나 당신을 두들겨 패거나 사진을 찍거나 당신이 <뜨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안 맞는 장소에 맞는 사람으로 있거나 맞는 장소에 안 맞는 사람으로 있는 것은 항상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182)

잘 “안 맞는 사람”이 내가 느끼는 당신이다. 그래서인지 당신은 떠다니고 눈에 띈다. 당신의 헤어스타일이나 차림새만 봐도 그렇다. 무언가 부적절하다. 그런데 왠지 안 맞는 것이 당신에게 딱 맞는다고나 할까? 여기에 모순과 재미가 있는 것 같다.
앤디 워홀 나는 무언가 안 맞고 틀린 것이 좋다. 거기서 재미가 스며 나온다. 영화를 보면 나는 “아마추어 연기자나 서툰 연기자밖에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무슨 연기를 하든 잘 들어맞지 않고 그래서 거짓이 있을 수 없다. 내가 만일 연기자를 캐스팅한다면 그 배역에 안 맞는 사람을 쓸 것이다. 배역이안 맞는 사람들이 나에게는 언제나 너무 잘 맞는 것처럼 보인다.”(101) 이것은 모순이 아니라 직관이다. 나는 항상 내가 좋다고 느끼는 대로 한다. 그러면 쉽고 결과도 좋다.

당신과 이야기하는 것은 쉽고 명료하고 재미있다. 누가 나에게 당신을 소개하라고 하면 나는 당신을 재미있는 사람이라 할 것이다. 만약 자신을 소개하라고 하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아니, 당신은 대체로 자신을 어떻게 소개해 왔는가?
앤디 워홀 많은 자리에서 나를 소개할 일이 있다. 나는 나를 소개하는 일로 돈을 버는 사람이다. 물론 그 내용을 다 기억은 하지 못한다. 언제나 다르게 말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같은 질문에 대해서도 금방 다르게 말한다. 말하자면 “나는 신문사마다 다른 자서전을 제공한다. 그럴 때 사람들은 내가 매체들을 <놀린다>고 말한다.”(97) 이 말을 부정하지 않는다. 내가 신문사들을 놀리는 건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를 놀리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자. 언제나 같은 정보를 신문사들에주는 것은 더 놀리는 일이 아닌가?

▲ 이수명     


당신의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 모두가 알다시피 당신은 엄청난 양의 작품을 제작했다. 실크스크린으로 똑같은 것을 한꺼번에 찍어냈고 앞으로도 무한하게 찍어낼 수 있다.

공장에서의 생산과 작가의 예술품이 다를 수 있는지, 혹은 전혀 다르지 않은 것인지 하는 케케묵은 질문을 한 번 더 해 보고 싶다. 예술이라는 행위는 이제 무엇을 지칭하는가?
앤디 워홀 내가 하는 일이 예술인지 아닌지 하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다. 어차피 계속 달리 불리게 될 일이다. 다만 예술이든 아니든 “나는 무슨 일이든 양이야말로 가장 좋은 계량 기준이라고 생각한다.”(170) 그것은 눈에 보인다. 양이 많으면 효과가 커진다. 내가판화를 하는 이유이다. “피카소가 죽었을 때 나는 한 잡지에서 그
가 생전에 4천 점의 걸작을 그렸다고 쓴 기사를 읽고, <이야, 나는 하루에 그렇게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시작했다. 그 그림들은 모두 같은 것이므로 모두 걸작이 될 것들이었다.”(170) 판화는 단박에 많은 걸작을 가능하게 해준다. 그것은 욕망만큼 무한 증식될 수 있는 것이다. 왜 걸작이 세상에 하나 혹은 단지 몇 개여야 하는가?

당신의 말이 맞다 할지라도 판화는 당연히 당신이 직접 할 필요가 없다. 당신의 공장에서 생산된, 당신이 제작하지 않은 판화를 당신의 작품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가? 다시 예술이라는 행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당신의 입으로 직접 듣고 싶다.
앤디 워홀 예술이라는 말을 특별하게 쓰고 싶지 않다. 나는 언어를 함부로 내뱉고 싶고 무차별하게 사용하는 것을 좋아한다. 예술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병원에 있는 동안 스태프들이 사업을 운영해나갔다. 나 없이도 일이 진행되고 있었으니 나는 일종의 키네틱 비즈니스를 했던 것이다. 나로서는 그것이 좋았다. 왜냐하면 그즈음의 나는 비즈니스를 최고의 예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아트는 예술 다음에 오는 단계이다. 나는 상업 아티스트로 출발했지만 비즈니스 아티스트로 마감하고 싶다. 나는 아트 비즈니스맨, 또는 비즈니스 아티스트이기를 원했다. 비즈니스에서 성공하는 것은 가장 환상적인 예술이다. 히피가 유행하던 시절, 사람들은 비즈니스의 개념을 격하했다. 그들은 말하기를 <돈은 더러운 것이다> 또는 <일하는 것은 추하다>라고 했다. 그러나 돈 버는 일은 예술이고 일하는 것도 예술이며 잘 되는 비즈니스는 최고의 예술이다.”(112)

비즈니스를 예술이라고 하면 예술이 아닌 것이 무엇이겠는가? 생산, 유통, 판매, 경영, 관리,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회적 행위들을 예술이라고 할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시각이라기보다는 예술에 대한 ‘사기’로 조롱받을 소지가 있다. 당신도 익히 들은 바 있을 터이다. 당신은 자신의 작품에 붙여지는 이런 낙인에 대해 조금도 개의치 않는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앤디 워홀 예술은 본래 사기다. 애써 소장할 필요가 없는 것들을 소장하게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것은 더구나 비싼 가격에 팔린다. 예술가들은 대우받는다. 시대별로 차이가 있지만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 어느 시대고 예술가로서 “당신이 사기꾼이라면 당신은 여전히 높은 곳에 모셔진다. 당신은 책을 낼 수 있고, 텔레비전에 출연할 수 있으며, 인터뷰를 할 수 있다. 당신은 경하의 대상이며, 아무도 당신을 무시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당신은 사기꾼이기 때문에.”(104) 이것이 예술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예술은 무에서 출발해 최고의 값이 나가는 어떤 가치를 차지하는 것이고 그것은또 사람들이 원하는 크기에 부응한다. 예술에서 “사람들이 다른 어떤 것보다 스타를 원하는”(104)것이다.

당신에게 예술은 돈이나 지위, 자본주의적 가치와 잘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기’라는 것도 수완이 좋은 비즈니스맨을 떠올리게 한다. 예술을 반자본, 반권력, 반체제로 숭앙하는 보편적인 예술가들이나 평론가들과 다르다. 실제로 당신은 예술로 돈을 추구하는가? 돈은 당신의 일에 어떤 도움이 되는가?
앤디 워홀 돈은 언제나 새롭게 보인다. “돈은 내게 순간이다. 돈은 나의 기분이다.”(159) 나는 돈이라는 물건을 좋아한다. 이것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데, 일단 잘 만들어졌다. 실제로 “미국 화폐는 디자인이 아주 좋다. 나는 단지 돈이 뜨는 것을 보기 위해 스태튼 아일랜드 페리에서 이스트 강으로 돈을 던진 적이 있다.”(159)

돈이 아름답다는 당신의 말이 충분히 감각적이어서 잘 이해가 된다. 그런데 어딘지 돈에 대한 페티시즘 같기도 하다.
앤디 워홀 인간의 욕망은 모두 페티시즘에 기반한다. 나는 특별히 돈을 좋아한다. “돈에는 어떤 특별사면 같은 것이 있다. 돈을 쥐고 있을 때, 나는 내 손이 그렇듯이 지폐에도 병균이 없다고 느낀다. 내가 손으로 돈을 넘길 때 돈은 나에게 완전히 깨끗한 물건이 된다. 나는 그 돈이 어디서 왔는지 누가그것을 만졌는지 무엇으로 만졌는지 모른다. 내가 돈을 만지는 순간 그것의 과거는 지워진다.”(160)
돈은 마술이다. 돈만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높은 만족도를 고르게 주는 것이 많지 않을 것이다.
돈은 더럽지 않고 매번 최대치의 만족이 된다. 돈으로 용서를 구할 수도 있고 마음을 줄 수도 있다.
돈은 그것이 놓인 상황과 공간을 정당화한다.


당신은 예술이라는 말을 특별히 쓰는 것을 싫어한다 했는데, 웬일인지 어떠한 이야기를 해도 예술에 대한 이야기로 들린다. 돈으로 구체화했는데 그것 역시 예술의 상황과 공간에 대한 것으로 여겨진다. 공간이라는 것은 판화나 오브제나 어떠한 작업에도 예술에 특별한 것이지 않은가? 이미 양에 대한 이야기도 했고, 당신에게는 실제로 쌓아올리기 위해 넓은 공간을 차지하는 작품이 많다. 공장이라는 작업 장소도 그렇다. 당신에게 공간이란 어떤 가능성과 즐거움을 주는가? 외형적으로만 보았을 때는 당신은 공간에 늘 무언가를 설치해 놓음으로써 공간을 신용하고 호출하는 쪽은 아닌지. 그런데 그것은 한편으로 공간에 대한 배반이 아닐까.

앤디 워홀 내가 무언가를 공간에 놓을 때, 나는 그것이 쓰레기라고 생각한다. “비어 있어야 하는 공간에 집어넣을 쓰레기를 사람들에게 만들어 주고 있”(166)는 것이다. 나는 공간은 단지 공간으로, 방해를 받지 않을 때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 놓일 때 공간은 위축되는 것이다. 따라서 “사물을 볼 때 나는 항상 사물이 차지하는 공간을 본다. 그리고 언제나 그 공간이 다시 나타나기를, 되돌아오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그 안에 뭔가가있을 때 그 공간은 상실된 공간이기 때문이다. 어떤 아름다운 공간 안에 놓여 있는 의자 하나를 본다고 하자. 그 의자가 얼마나 아름답든 간에 나에게는 평범한 공간만큼 아름다울 수 없다.”(166) 예술은 공간을 낭비하는 것이며, 훼손과 회복을 등가에 놓는 버릇이라 할 수 있다. 공간을 침해함으로써 공간의 귀환을 꿈꾸는 것이다.

사물과 공간이 분리되지 않는 경우는 어떠한가? 사물은 공간을 차지하면서 스스로 공간이기도 하다. 인간역시 공간을 차지하면서 공간 자체가 아닌가? 존재하는 것들은 자신의 배경과 구별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구별하는 것은 우리의 생각일 뿐이다. 당신의 작업에서도 이러한 분리가 작위적으로 일어난다고 볼 수있는가?
앤디 워홀 그렇다. 분리를 작동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을 보게 해준다. “공간은 모두 하나의 공간이고 사고는 모두 하나의 사고이다. 그런데 내 마음은 공간을 작은 공간들로 나누고 또 나누고 사고를 작은 사고들로 나누고 또 나눈다. 커다란 콘도미니엄처럼. 가끔 나는 하나의 공간과 하나의 사고를 생각한다.”(165) 이 과정은 멈추지 않는다. 하나에서 여러 작은 공간들로, 작은 공간들에서 하나의 공간으로 왕복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이 함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생활이 이렇게 되어 있는 것 같다. 당신의 원룸도 이런 것이 아닐까. 이러저러한 물건들과 공간들이 원룸 안에 들어 있고, 이것들은 다시 하나의 룸을 이루고, 그럴 것이다. 우리의 미래도 비슷하지 않을까.
앤디 워홀 슈퍼에 갈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한다. “물건을 파는 슈퍼마켓과 쓰던 물건들을 다시 사는 슈퍼마켓이 있어야 한다. 그것들이 대등해지기 전까지는 필요 이상의 쓰레기가 생길 것이다. 사람들은 전부 되팔 수 있는 물건을 가지고 있게 되고 그렇게 해서 누구든 돈을 가지고 있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이 팔 물건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갖고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팔 만한 물건이아니다. 오늘날에는 새로운 물건을 너무 좋아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사람들은 빈 깡통과 닭고기 뼈, 샴푸 병, 다 본 잡지들을 팔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좀 더 유기적이어야 한다. 나는 사람들이 먹고 싸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왜 사람들이 먹은 것을 다 받아서 재생한 뒤 입으로 다시 보내는 튜브를 등 뒤에 만들어 달지 않는지 의문이다. 그렇게 하면 음식을 사거나 먹는 일을 두 번 다시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배설물을 보지 않아도 될 터이고 더럽지도 않을 것이다. 원한다면 되돌려 보내는 튜브에 인공적으로 색을 칠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분홍색으로”(168)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세계다. 모든 것은 충족되어 있다. 공급되어 있다는 말이 더 적절할 것이다. 다만 아직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편중되고 판단될 뿐이다. 생각이라는 것에 의해.


당신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예술이라는 것이 흔해빠진 오브제에의 불가능한 도달, 존재하지 않는 평준화에 의 실현 같기만 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지금도 예술을 다르고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예술을 언제나 다른 길을 향하는 시도로 생각하는 것이다. 아직도 무언가를 열심히 뒤지고 다니는 별난 인종들이 모여 있는 곳이 예술 세계 아닌가? 주어진 삶을 떠나 특별한 일요일을 찾아 헤매는 부류 말이다.
앤디 워홀 특별하지 않더라도 “나는 일요일을 싫어한다. 꽃가게와 서점 외에는 모든 가게가 문을 닫기 때문이다.”(155)

일요일을 싫어하면 휴가도 싫어하는가? 당신이 휴가를 보내는 모습이 잘 안 떠오른다. 오랜만의 휴가를 얻는다면 당신은 무얼 하고 싶은가?
앤디 워홀 “휴가를 가질 수 있다면 나는 어디도 가고 싶지 않다. 나는 그냥 내 방으로 가고 싶다. 베개를 부풀려 놓고 텔레비전 두 대를 켠 다음, 리츠 크래커 상자를 열어 놓고 러셀 스토버 캔디 상자를 뜯은 다음 《TV 가이드》를 제외한 가판대에서 파는 모든 최근 잡지를 가져다 놓는다. 나는 자기 식으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빈둥거리며 지내는 것이 너무 좋다. 내 방에서 시간은 너무나 천천히 간다.
모든 일이 너무 빨리 일어나는 것은 바깥뿐이다.”(136) 내방과 바깥의 시간의 차이 때문에 나는 사람들과 박자가 잘 맞지 않고 그들이 날 이상하게 여기는 것에 익숙하다. 하지만 나는 나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리고 물론 그들과 잘 지낸다. “‘그래서 어떻단 말이야’, 이것은 내가 말하기 좋아하는말 중 하나이다. 그래서 어떻단 말인가.”(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