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①우리 공동체의 테두리와 깊이 ②언제든 다시 광장으로 ③국경을 지우기, 이주민을 환대하기 ④소수자, 현장, 연결
앞 강물, 뒷 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오라고 따라가자고
1920~30년대 경성의 거리와 음식에 대한 몇 가지 소묘
첫번째｜먼 우레처럼, 두번째｜열등감에 대하여 세번째｜너무 빨리 온 미래 네번째｜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는 것
기획특집
최근의 유행어로 그나마 실감이 생생한 것으로는 역시 ‘이게 나라냐’, ‘헬 조선’, ‘차악이 라도 뽑아야지’ 정도가 아닐까 싶다. 세 말이 고루 엔간히도 자조적이고, 신푸녕스럽다며 야유조다. 그래도 이 땅에서 살아남으려는 안간힘 같은 게 얼른거리기는 해서 천만다행 이다.
잠시 되돌아보면 당시의 위정자들과 그들의 통치 행태에 대한 빈정거림은 지난 시절에 도 지금 이상으로 흔했고 또 그 질도 지독했다. 우리의 그런 조롱과 비어가 아직도 ‘전통 살리기’처럼 이어져오니 참으로 검질기다는 생각도 든다. 예컨대 이박사 독재정부 때는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며 제법 다부지게 삿대질을 했고, 세칭 박통의 유신 시절과 전통의 5 공 치하 때는 술집 같은 데서 넥타이 차림의 멀쩡한 월급쟁이가 어느 순간 불쑥 일어나서 ‘뭣 같은 세상 뭣이나 하고 살자’라고 씨부렁거려서 다들 가가대소한 적도 있으니 말이다. 그때의 그 발악에는 이제 겨우 다리 뻗고 때맞춰 밥이나 먹게 되었답시고 푸념성 해학기 라도 껴묻어 있었건만 이제는 자포자기와 적대적인 기운이 넘실거려서 조금 아득해진다. 좀 과장하면 우리 삶의 근간인 ‘정치판’ 자체를 차제에 결딴내버리고 싶다는 염원까지 비치니 말이다. 아마도 이런 민심의 대종이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정체와 시장경제 원리를 따르는 자 본주의 질서까지 갈아엎겠다는 작심일리는 만무 하겠지만, 적어도 작금의 통치력 일체와 그 주체 들인 고위 공직자 대다수의 합법적인 위상을 전 적으로 부정, 매도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우리 사회는 속속 불거져 나오는 하수상한 정치적 비리, 불법, 부정 행각과 그에 대응하는 대규모 시위행사를 그때그때마다 흐지부지 땜질하는 유연한 포용성이랄까, 허허실 실의 대범성에서 그 뛰어난 장기를 유감없이 발 휘해오고 있어서 여간 미쁘지 않다. 신기한가 하 면 우습기도 하고, 우리의 역사 현장이야말로 희 비극의 교차 경연장을 방불케 해서 흥미진진하기 이를 데 없다. 일시에 그처럼 떼 지어 소매를 부 르걷던 그 많은 촛불 시위와 태극기 행진이 그새 어디로 다 자취를 감추었을까. 그 극성스럽던 애 국열이 생업의 현장에서도 여전히 괄하게 타오르 고 있을까.
이 글의 주제를 제시해준 편집자 제위는 탄핵 정국 후의 새 정부가 이끌 우리 공동체의 실상과 허상을 소신껏 점검해달라는 것인 듯하다(이처럼 진부한 화제와 맞닥뜨리면 흔히 긴가민가해지고 이런저런 추측을 더듬어야 하니 나도 딱하긴 하 다). 어쨌든 그렇다면 결국 그 최고위직에서 파면 당한 양반의 사례를 만부득이 들고 나서야 하지 않을까 싶다. 따지기로 들면 끝도 한도 없겠으나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두 실격 사례만 들겠다.
다들 지겹게 보아온 대로 작년부터 지금까지 모든 텔레비전 채널이 걸핏하면 비춰대는 장면으로, 흡사 짝퉁 제조 전문의 의류회사 하청공장 같은 데서 대통령의 정장을 골라내는 그 진지한 국사(國事) 수행 현장은 즉각, 도대체 저게 뭔가, 실제로 옷 심부름을 저렇게 하는가 하고 어안이 벙벙해지는 광경이었다. 모르긴 해도 국고가 대통 령의 품위 유지비를 대줄 테니, 그것으로 초일류 디자이너를 불러서 이렇게 저렇게 지어 오라고 이 르든가, 유명 백화점이나 명품 상점의 전문가들 자문을 받아 사 입어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도 자신의 매무새를 저런 하치장에서 기중 하치를 고르다니, 당사자야 자기 취향대로 입는다지만 국격이란 것도 있으니 세금을 꼬박꼬박 내는 국 민의 창피스러움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게다가 서민들은 짜장면 한 그릇 값도 카드로 긁는데 거 금의 옷값을 5만 원 권으로 지불하는 장면도 수 상쩍을뿐더러 비정상이지 않은가. 어차피 주인이 나 몸종은 ‘해로’하면서 알게 모르게 서로 닮아간 다지만 어떻게 저처럼 천격인가, 무슨 블랙 코미 디의 한 장면도 아니고, 라며 실소를 베물다가 안 면이 경직되기까지 했으니 나만의 과민 반응인지 도 모르겠다.
또 하나의 사례로는, 최상의 의술 혜택을 받으 라고 법적으로 규정하고 있는데도 굳이 비선(秘 線)의 반사이비 의료시술을 수시로 받았다니, 그 런 자의적, 음성적 몸 간수 습벽은 섬찍하기까지 하다. 따라서 몸이 그런 것처럼 마음이나 정신 상 태도 병적이거나 심각한 이상이 노정되었다고 봐 야 하지 않을까.
아무튼 위의 두 탈법 사례만으로도 그는 대통 령으로서의 자격을 진작 잃어버린 것이고, 충분 히 예상할 수 있는 미구의 희비극을 일찌감치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탄핵 재판의 결과는 필지였다.
이미 지나간 정치적 파탄이고, 또 한 특정인의 무지, 무능이 불러온 국정 문란 행위 중 하필이 면 구지레한 대목만 초들어 지적한다고 힐난할지 모르겠다. 이제 와서 따져봐야 뭐하냐고, 잊고 살 자고, 싸우면서 크고 배우지 않느냐고, 용서하자 고 다들 나설 게 틀림없다. 그런 허허실실이 우리 국민성의 미덕이면서 동시에 고질임을 알 만한 사 람이 또 긁어 부스럼을 만들 작정이냐고 할지 모 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용서할 수 없 는 ‘인품 포기증후군’을 한번쯤 따져봐야 하지 않 을까싶다.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기왕의 모든 대 통령을 비롯한 작금의 여러 공직자들은 공심(公 心)에 등한한 게 아니라 각자의 정신, 체신, 심신 에 자신만의 공적, 사적인 어떤 ‘테두리’가 없다 는 것이 나의 오래된 소회이다. 그것이 있고 없음은 한 개인의 인간다움을, 그 품위를, 위엄을 한 꺼번에 가름해버린다. 멀쩡한 지위의 유명인이 ‘촌스러운 것’도 대체로 그것에서 미달 내지는 결 격이 현저해서임은 보는 바와 같다. 공연히 어렵 게 설명하고 있다면 상투적인 표현을 따와서 자 신의 체취에 그 어떤 색깔도, 개성도, 육성도 전 무한 물신선이라면 얼추 맞을지 모르겠다. 내 눈 에는 그들이 하나같이 형용만 그럴 듯한 인간의 탈을 덮어쓰고 있을까,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각 자의 처신에 어떤 ‘각=모’를 세우는 데 소홀한 게 아니라 아예 그런 의식조차 없다. 그 거드럭거림 이 가짜의, 유령의 그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달리 부연할 수도 있다. 어느 공동체라도 나 랏일이든 개인적 볼일이든 그 당면 업무를 능률 적으로 감당하기 위해서 ‘제도’를 만든다. 이른 바 법도 그 중의 하나다. 그것을 지키면 편할 뿐 더러 적어도 ‘사달’을 미연에 웬만큼 방지할 수 있 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지키려다가 이내 숱한 ‘편법’부터 만들어내느라고 잔머리를 쥐어짜버릇 하고, 결국 기껏 잘 만들어놓은 제도도 유명무실 해지고, 사람도 ‘푼수’가 되고 마는 것이다. 비단 박근혜 전 대통령만 그런 것도 아니고, 다들 머 리가 너무 나쁜 듯하다, 그렇지 않겠는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여러 변호사들과 태극기 ‘부대’들이 ‘절차’가 잘못 되었다고 따지는데, 절차 는 제도를 제대로 굴러가게 하는 수단일 뿐이고 하위 단위이다. 제사를 안 모시려는 불효자에게 어동육서를 가르쳐봐야 무슨 소용인가. 제도 준 수에 등한하니 유령처럼 아무 데나 넘나드는 것 이다.
논지가 한참이나 에둘렀으나 사람이든 제도든 테두리가 분명해져야 비로소 어떤 ‘깊이’를 따질 수 있다는 평범한 도식을 털어놓기 위해서이다. 우리의 위정자들이 그토록 야유의 대상으로 살 아내면서도 이때껏 이렇다 할 개전의 정을 보이지 못하고 있음은 유령처럼 어떤 테두리가 없어서 오리무중의 위인들인 데다 당연하게도 어떤 깊이 가 없어서이다. 요즘 다들 함부로 좋다며 쓰는 그 좀 모자라는 ‘취향’조차 보이지 않는 것이다. 보신 주의, 원만주의, 추수주의가 난무하는 현장에서 진보와 보수로 편 가르기를 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진정한 보수와 진보의 노선을 추구하 려면 어떤 경계를 먼저 설정해야 할 테고, 그 다 음에 그 길을 줄기차게 파고들어갈 여러 방법이 든 수단을 강구해야 할 것 아닌가. 그러니 우리의 역대 보수/진보 정권은 공산주의 내지 인민민주 주의를 국시로 내걸어놓고 실은 김씨의 세습왕조 내지 그 체제를 억지로 꾸려가는 경우와 대비할 때, 적어도 그 지칭어와 시책이 겉돌고 있다는 점 에서 상동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
두 쪽의 시대착오적 발상은 부지기수이지만 그 런 고식적 대응도 결국은 ‘깊이’ 부재에서 나온 것 임은 물론이다. 테두리가 지어지고 나서야 깊이 가 있어지고, 비로소 말이 바로 설 테니 말이다. 이른바 정명(正名)이다. 그 실례를 하나씩만 들면 이렇다. 남녀노소 누구라도 당장 비행기표만 사 면 세계 각지를 제멋대로 몇 달씩 돌아다닐 수 있 는 이런 시속에서 국내정보와 국외정보를 어떻 게 가려내고, 국정원이 그 내사를 한쪽만 맡으라 고 닦달하는 정책은 자가당착의 극치 아닌가. 비 록 증거를 대라고 따지고 있긴 해도 박근혜 전 대 통령의 위법사안은 상식적인 시각으로도 확실한 데 미리 법적인 면죄부 운운하는 것은 법치주의 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행패다. 역시 어느 쪽이라 도 테두리가 없는 데서 오는 경거망동인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의 진보/보수는 허구이며, 자연 스럽게도 이렇다 할 ‘깊이’가 없는 대거리 수준에 불과하다. 적절한 표현대로 빛 좋은 개살구를 참 칭하고 있을 뿐인 셈이다.
혹자는 따질 것이다. 세상이 변했다고. 진보/보 수를 축자적으로 해석하는 어리석음이 훤히 비 친다고. 그렇기는 해도 테두리가 있어야 정체성이 생기든지 말든지 할 것이고, 덜 헷갈릴 것 아닌 가. 또한 어느 정도의 깊이라도 있어야 실천이 따 를 것 아닌가. 역시 ‘입치레’로 어영부영 허송세월 할 게 뻔하지 않은가.
논지가 너더분해졌지만 이제는 우리 공동체 내 부의 어떤 특정 문제라도 워낙 복합적인 ‘적폐’투 성이라서 어차피 설건드릴수록 병집이 점점 더 크게 번질 수밖에 없고, 아무리 똑똑한 인사라도 제도와 절차를 혼동하듯이 이말 저말을 마구 주 워섬길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그러니 그 어느 때보다 ‘갈래짓기’가 요청되는 시점이다. 이런 때 일수록 괴테가, 연대장에게 국가는 연대 그 자체 다,라고 천명한 말은 새겨들을 만하다. 실제로도 테두리가 딱 부러지게 정해진 연대장조차 나름의 깊이를 만들자면 적어도 재임 중에는 철두철미하 게 ‘각=모’를 세우면서 제 부대를 깊이 파고들어 야 할 것 아닌가. 연대장 따위를 우습게 아는 우 리 지적 풍토에서 다들 전문가를 자칭하니 또 따 따부따 따지고 들 테지만. 오늘날 같은 ‘스마트폰 애무 시대’에 말 못하는 사람이 있기나 하겠으며, 누군들 가짜 전문가가 아니랴.
①우리 공동체의 테두리와 깊이
글 김원우 ㅣ 소설가. 1947년생
소설 『운미 회상록』 『부부의 초상』 『모서리에서의 인생독법』 『객수산록』 『젊은 천사』 등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1
우리 공동체의
테두리와 깊이
테두리와 깊이
| ■■ 일시에 그처럼 떼 지어 소매를 부르걷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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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유행어로 그나마 실감이 생생한 것으로는 역시 ‘이게 나라냐’, ‘헬 조선’, ‘차악이 라도 뽑아야지’ 정도가 아닐까 싶다. 세 말이 고루 엔간히도 자조적이고, 신푸녕스럽다며 야유조다. 그래도 이 땅에서 살아남으려는 안간힘 같은 게 얼른거리기는 해서 천만다행 이다.
잠시 되돌아보면 당시의 위정자들과 그들의 통치 행태에 대한 빈정거림은 지난 시절에 도 지금 이상으로 흔했고 또 그 질도 지독했다. 우리의 그런 조롱과 비어가 아직도 ‘전통 살리기’처럼 이어져오니 참으로 검질기다는 생각도 든다. 예컨대 이박사 독재정부 때는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며 제법 다부지게 삿대질을 했고, 세칭 박통의 유신 시절과 전통의 5 공 치하 때는 술집 같은 데서 넥타이 차림의 멀쩡한 월급쟁이가 어느 순간 불쑥 일어나서 ‘뭣 같은 세상 뭣이나 하고 살자’라고 씨부렁거려서 다들 가가대소한 적도 있으니 말이다. 그때의 그 발악에는 이제 겨우 다리 뻗고 때맞춰 밥이나 먹게 되었답시고 푸념성 해학기 라도 껴묻어 있었건만 이제는 자포자기와 적대적인 기운이 넘실거려서 조금 아득해진다. 좀 과장하면 우리 삶의 근간인 ‘정치판’ 자체를 차제에 결딴내버리고 싶다는 염원까지 비치니 말이다. 아마도 이런 민심의 대종이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정체와 시장경제 원리를 따르는 자 본주의 질서까지 갈아엎겠다는 작심일리는 만무 하겠지만, 적어도 작금의 통치력 일체와 그 주체 들인 고위 공직자 대다수의 합법적인 위상을 전 적으로 부정, 매도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우리 사회는 속속 불거져 나오는 하수상한 정치적 비리, 불법, 부정 행각과 그에 대응하는 대규모 시위행사를 그때그때마다 흐지부지 땜질하는 유연한 포용성이랄까, 허허실 실의 대범성에서 그 뛰어난 장기를 유감없이 발 휘해오고 있어서 여간 미쁘지 않다. 신기한가 하 면 우습기도 하고, 우리의 역사 현장이야말로 희 비극의 교차 경연장을 방불케 해서 흥미진진하기 이를 데 없다. 일시에 그처럼 떼 지어 소매를 부 르걷던 그 많은 촛불 시위와 태극기 행진이 그새 어디로 다 자취를 감추었을까. 그 극성스럽던 애 국열이 생업의 현장에서도 여전히 괄하게 타오르 고 있을까.
이 글의 주제를 제시해준 편집자 제위는 탄핵 정국 후의 새 정부가 이끌 우리 공동체의 실상과 허상을 소신껏 점검해달라는 것인 듯하다(이처럼 진부한 화제와 맞닥뜨리면 흔히 긴가민가해지고 이런저런 추측을 더듬어야 하니 나도 딱하긴 하 다). 어쨌든 그렇다면 결국 그 최고위직에서 파면 당한 양반의 사례를 만부득이 들고 나서야 하지 않을까 싶다. 따지기로 들면 끝도 한도 없겠으나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두 실격 사례만 들겠다.
다들 지겹게 보아온 대로 작년부터 지금까지 모든 텔레비전 채널이 걸핏하면 비춰대는 장면으로, 흡사 짝퉁 제조 전문의 의류회사 하청공장 같은 데서 대통령의 정장을 골라내는 그 진지한 국사(國事) 수행 현장은 즉각, 도대체 저게 뭔가, 실제로 옷 심부름을 저렇게 하는가 하고 어안이 벙벙해지는 광경이었다. 모르긴 해도 국고가 대통 령의 품위 유지비를 대줄 테니, 그것으로 초일류 디자이너를 불러서 이렇게 저렇게 지어 오라고 이 르든가, 유명 백화점이나 명품 상점의 전문가들 자문을 받아 사 입어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도 자신의 매무새를 저런 하치장에서 기중 하치를 고르다니, 당사자야 자기 취향대로 입는다지만 국격이란 것도 있으니 세금을 꼬박꼬박 내는 국 민의 창피스러움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게다가 서민들은 짜장면 한 그릇 값도 카드로 긁는데 거 금의 옷값을 5만 원 권으로 지불하는 장면도 수 상쩍을뿐더러 비정상이지 않은가. 어차피 주인이 나 몸종은 ‘해로’하면서 알게 모르게 서로 닮아간 다지만 어떻게 저처럼 천격인가, 무슨 블랙 코미 디의 한 장면도 아니고, 라며 실소를 베물다가 안 면이 경직되기까지 했으니 나만의 과민 반응인지 도 모르겠다.
또 하나의 사례로는, 최상의 의술 혜택을 받으 라고 법적으로 규정하고 있는데도 굳이 비선(秘 線)의 반사이비 의료시술을 수시로 받았다니, 그 런 자의적, 음성적 몸 간수 습벽은 섬찍하기까지 하다. 따라서 몸이 그런 것처럼 마음이나 정신 상 태도 병적이거나 심각한 이상이 노정되었다고 봐 야 하지 않을까.
아무튼 위의 두 탈법 사례만으로도 그는 대통 령으로서의 자격을 진작 잃어버린 것이고, 충분 히 예상할 수 있는 미구의 희비극을 일찌감치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탄핵 재판의 결과는 필지였다.
논지가 한참이나 에둘렀으나 사람이든 제도든 테두리가 분명해져야 비로소 어떤 ‘깊이’를 따질 수 있다는 평범한 도식을 털어놓기 위해서이다. 우리의 위정자들이 그토록 야유의 대상으로 살아내면서도 이때껏 이렇다 할 개전의 정을 보이지 못하고 있음은 유령처럼 어떤 테두리가 없어서 오리무중의 위인들인 데다 당연하게도 어떤 깊이가 없어서이다.
이미 지나간 정치적 파탄이고, 또 한 특정인의 무지, 무능이 불러온 국정 문란 행위 중 하필이 면 구지레한 대목만 초들어 지적한다고 힐난할지 모르겠다. 이제 와서 따져봐야 뭐하냐고, 잊고 살 자고, 싸우면서 크고 배우지 않느냐고, 용서하자 고 다들 나설 게 틀림없다. 그런 허허실실이 우리 국민성의 미덕이면서 동시에 고질임을 알 만한 사 람이 또 긁어 부스럼을 만들 작정이냐고 할지 모 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용서할 수 없 는 ‘인품 포기증후군’을 한번쯤 따져봐야 하지 않 을까싶다.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기왕의 모든 대 통령을 비롯한 작금의 여러 공직자들은 공심(公 心)에 등한한 게 아니라 각자의 정신, 체신, 심신 에 자신만의 공적, 사적인 어떤 ‘테두리’가 없다 는 것이 나의 오래된 소회이다. 그것이 있고 없음은 한 개인의 인간다움을, 그 품위를, 위엄을 한 꺼번에 가름해버린다. 멀쩡한 지위의 유명인이 ‘촌스러운 것’도 대체로 그것에서 미달 내지는 결 격이 현저해서임은 보는 바와 같다. 공연히 어렵 게 설명하고 있다면 상투적인 표현을 따와서 자 신의 체취에 그 어떤 색깔도, 개성도, 육성도 전 무한 물신선이라면 얼추 맞을지 모르겠다. 내 눈 에는 그들이 하나같이 형용만 그럴 듯한 인간의 탈을 덮어쓰고 있을까,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각 자의 처신에 어떤 ‘각=모’를 세우는 데 소홀한 게 아니라 아예 그런 의식조차 없다. 그 거드럭거림 이 가짜의, 유령의 그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달리 부연할 수도 있다. 어느 공동체라도 나 랏일이든 개인적 볼일이든 그 당면 업무를 능률 적으로 감당하기 위해서 ‘제도’를 만든다. 이른 바 법도 그 중의 하나다. 그것을 지키면 편할 뿐 더러 적어도 ‘사달’을 미연에 웬만큼 방지할 수 있 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지키려다가 이내 숱한 ‘편법’부터 만들어내느라고 잔머리를 쥐어짜버릇 하고, 결국 기껏 잘 만들어놓은 제도도 유명무실 해지고, 사람도 ‘푼수’가 되고 마는 것이다. 비단 박근혜 전 대통령만 그런 것도 아니고, 다들 머 리가 너무 나쁜 듯하다, 그렇지 않겠는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여러 변호사들과 태극기 ‘부대’들이 ‘절차’가 잘못 되었다고 따지는데, 절차 는 제도를 제대로 굴러가게 하는 수단일 뿐이고 하위 단위이다. 제사를 안 모시려는 불효자에게 어동육서를 가르쳐봐야 무슨 소용인가. 제도 준 수에 등한하니 유령처럼 아무 데나 넘나드는 것 이다.
논지가 한참이나 에둘렀으나 사람이든 제도든 테두리가 분명해져야 비로소 어떤 ‘깊이’를 따질 수 있다는 평범한 도식을 털어놓기 위해서이다. 우리의 위정자들이 그토록 야유의 대상으로 살 아내면서도 이때껏 이렇다 할 개전의 정을 보이지 못하고 있음은 유령처럼 어떤 테두리가 없어서 오리무중의 위인들인 데다 당연하게도 어떤 깊이 가 없어서이다. 요즘 다들 함부로 좋다며 쓰는 그 좀 모자라는 ‘취향’조차 보이지 않는 것이다. 보신 주의, 원만주의, 추수주의가 난무하는 현장에서 진보와 보수로 편 가르기를 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진정한 보수와 진보의 노선을 추구하 려면 어떤 경계를 먼저 설정해야 할 테고, 그 다 음에 그 길을 줄기차게 파고들어갈 여러 방법이 든 수단을 강구해야 할 것 아닌가. 그러니 우리의 역대 보수/진보 정권은 공산주의 내지 인민민주 주의를 국시로 내걸어놓고 실은 김씨의 세습왕조 내지 그 체제를 억지로 꾸려가는 경우와 대비할 때, 적어도 그 지칭어와 시책이 겉돌고 있다는 점 에서 상동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
두 쪽의 시대착오적 발상은 부지기수이지만 그 런 고식적 대응도 결국은 ‘깊이’ 부재에서 나온 것 임은 물론이다. 테두리가 지어지고 나서야 깊이 가 있어지고, 비로소 말이 바로 설 테니 말이다. 이른바 정명(正名)이다. 그 실례를 하나씩만 들면 이렇다. 남녀노소 누구라도 당장 비행기표만 사 면 세계 각지를 제멋대로 몇 달씩 돌아다닐 수 있 는 이런 시속에서 국내정보와 국외정보를 어떻 게 가려내고, 국정원이 그 내사를 한쪽만 맡으라 고 닦달하는 정책은 자가당착의 극치 아닌가. 비 록 증거를 대라고 따지고 있긴 해도 박근혜 전 대 통령의 위법사안은 상식적인 시각으로도 확실한 데 미리 법적인 면죄부 운운하는 것은 법치주의 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행패다. 역시 어느 쪽이라 도 테두리가 없는 데서 오는 경거망동인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의 진보/보수는 허구이며, 자연 스럽게도 이렇다 할 ‘깊이’가 없는 대거리 수준에 불과하다. 적절한 표현대로 빛 좋은 개살구를 참 칭하고 있을 뿐인 셈이다.
혹자는 따질 것이다. 세상이 변했다고. 진보/보 수를 축자적으로 해석하는 어리석음이 훤히 비 친다고. 그렇기는 해도 테두리가 있어야 정체성이 생기든지 말든지 할 것이고, 덜 헷갈릴 것 아닌 가. 또한 어느 정도의 깊이라도 있어야 실천이 따 를 것 아닌가. 역시 ‘입치레’로 어영부영 허송세월 할 게 뻔하지 않은가.
논지가 너더분해졌지만 이제는 우리 공동체 내 부의 어떤 특정 문제라도 워낙 복합적인 ‘적폐’투 성이라서 어차피 설건드릴수록 병집이 점점 더 크게 번질 수밖에 없고, 아무리 똑똑한 인사라도 제도와 절차를 혼동하듯이 이말 저말을 마구 주 워섬길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그러니 그 어느 때보다 ‘갈래짓기’가 요청되는 시점이다. 이런 때 일수록 괴테가, 연대장에게 국가는 연대 그 자체 다,라고 천명한 말은 새겨들을 만하다. 실제로도 테두리가 딱 부러지게 정해진 연대장조차 나름의 깊이를 만들자면 적어도 재임 중에는 철두철미하 게 ‘각=모’를 세우면서 제 부대를 깊이 파고들어 야 할 것 아닌가. 연대장 따위를 우습게 아는 우 리 지적 풍토에서 다들 전문가를 자칭하니 또 따 따부따 따지고 들 테지만. 오늘날 같은 ‘스마트폰 애무 시대’에 말 못하는 사람이 있기나 하겠으며, 누군들 가짜 전문가가 아니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