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대산문화 표지

쉽게 씨워진 시

“살아있는 것은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도쿄 아사쿠사의 광대, 새로운 문학과 혁명을 꿈꾸었던 시인의 자화상

릴케의 천사

인터뷰어가 인터뷰이다

특집을 기획하며 ①시장 속의 문학 ②“비탄의 시대에 시인들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③미래에 관한 회상 ④살아남기 위한 자들의 언어

빨간 장미 한 송이

최후의 북촌 구식 현모양처이자 최초의 자유 신여성

시인이 안 됐으마 제비가 됐을 꺼로?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을 꿈꾸었던 「천체수업」

밤하늘의 투명한 시선들

평양에 갔을 때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천의 얼굴을 가진 조선의 천재’ 허균의 『성소부부고』

역사와 예술이 어우러진 ‘바다의 땅’, 통영

문인들의 ‘목뽑기’ 풍경 셋

정의론의 방법에 대한 질문

①진한 노을,초봄 개울에서 ②기러기떼 헛 가위질하듯,한네의 승천

①동전처럼 ② 오샤와 Oshawa

사물놀이

첫 번째|뒤늦게 눈뜬 재능 두 번째|혼자 있는 시간의 고요 세 번째|합포 산호동 옛집 네 번째|매미 오줌 맞기

①제25회 대산문학상 시·소설 부문 본심 대상작 선정 ②우리 문단에 당도한 새로운 감수성

유미리의 한국어

사실의 기록보다 더 무심한 영화, ‘전장’을 온전히 드러내다

소설의 귀환과 그늘

여백을 어루만지고 퇴고하다

낯선 것을 낯설지 않게 옮기기

추리와 역사 사이에서

이 세상은 꿈, 꿈이야말로 진실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 지원

2017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 지원대상작 선정 등

인문에세이 - 길을 묻다

릴케의 천사

글 김인환 ㅣ 평론가,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1946년생
저서 『문학교육론』 『현대시란 무엇인가』 『언어학과 문학』 『비평의 원리』, 역서 『에로스와 문명』 『주역』 등


릴케의 천사


한국 시인들에게 영향을 크게 미친 20세기의 외국시를 고를 때 1949년에 이인수 교수가 번역한 엘리엇의 「황무지」를 드는 데는 별 이의가 없을 것이고, 신석초의 「바라춤」(1959)에 뚜렷하게 흔적을 남긴 발레리의 「젊은 파르크」도 제외하기 어려울 것이다. 서정주는 강의 도중에, 그리고 가끔은 술자리에서도 「젊은 파르크」의 첫 시절 을 프랑스어로 암송하기 좋아했으나 그의 시에는 발레리의 영향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일지사판 「서정주전집」 2권(40쪽)에는 서정주가 번역한 「젊은 파르크」의 첫 시절이 프랑스어 원문과 함께 실려 있다.

거기서 누가 우느냐?
아니라, 그냥 바람 소리냐?
눈부시어 못 볼 금강석같이
외로운 이때를
거기 누가 우느냐?
내가 울려는 이때를
거기서 누가 우느냐?


프랑스어 3행을 여섯 행으로 나누어 옮겼는데, 나도 정확한 의미를 알 수는 없으나 아마 도 “나 혼자 먼 밤하늘의 금강석들을 보며”라는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듯한 “Seule avec diaments extrêmes”를 “눈부시어 못 볼 금강석같이 외로운 이때”라고 한 것은 서정주다운 독 창적인 번안이라고 하겠다.
주석 없이는 읽기 어려운 「황무지」에 비하여 번역문만으로도 주석 없이 읽을 수 있다는 점 때 문이겠지만 「두이노의 비가」는 한국 시인들에게 가장 자주 인용되는 시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 런데 이 시와의 영향관계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한국시를 구체적으로 지적하기는 쉽지 않다. 한 국 시인들이 「두이노의 비가」를 많이 읽으면서도 릴케의 그 시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릴케가 1912년부터 쓰기 시작하여 1922년에 완성한 「두이노의 비가」 10편은 천사와 인간을 비교하여 인간의 본질을 규명한 시이다. 각 편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인간은 의지 할 곳 없이 공허와 고통에 시달리는 존재이고 해석된 세계에서 관습에 맹종하는 존재이다. 인 간은 천사처럼 해석이 개입하지 않은 사물을 생생하게 지각하지 못한다. 천사가 보여주는 정신 의 아름다움은 소멸하는 존재인 인간의 몰락을 무시하고 멸시한다. 그러나 릴케는 남자에게 버 림받고 메마른 고독을 노래로 견뎌낸 가스파라 스탐파를 시위를 떠나 전율하며 운명의 한계 너 머로 날아간 화살에 비유한다. 2. 인간은 불타 사그라지는 나무이고 새벽녘에 풀잎에 맺혔다가 스러지는 이슬이다. 나무는 있고 인간은 흐른다. 영속성이 없이 유동하는 인간의 감성과 지성 은 천사에게 하찮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육체를 가진 인간은 서로 상대의 육체를 애무 하면서 사랑 속에서 포도처럼 성숙할 수 있다. 3. 애무의 어두운 숨결 속에는 피의 하신이 살고 있다. 인간의 내면은 태고의 수액이 흐르는 심연이다. 내면의 황야에 살고 있는 괴수를 달래지 못하면 무너져 내리는 산더미에 압사당하고 만다. 어머니는 아들을 혼돈에서 지켜주는 은신처 가 될 수 있으나 보호는 아들의 존재를 왜소하게 제한한다. 아들들은 어머니의 보호를 받지 않 고서도 핏속에서 솟구치는 태고의 용솟음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자제력을 훈련해야 한다. 4. 인간은 신체 없는 정신인 천사도 아니고 정신없는 신체인 인형도 아니고 천사와 인형의 합일 체도 아니다. 인형이 된 천사들이 부엌과 거실, 공장과 회사에 가득 차 있다. 릴케는 그들을 인 간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릴케가 인간이라고 부르는 존재는 갈등과 대립, 불안과 가식에 시달리 면서도 성내지 않고 부드럽게 죽음을 품에 안을 수 있는, 불완전한 동물이다. 5. 대도시에서 곡 예사(노동자)들은 억지 미소를 지으며 위험한 경쟁을 계속하다 폐인이 되고 유행품점 주인(자본 가)들은 매듭을 감고 풀고 하면서 하나같이 거짓으로 물들인 리본을 고안해 내어 부자가 된다.


주석 없이는 읽기 어려운 「황무지」에 비하여
번역문만으로도 주석 없이 읽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이겠지만
「두이노의 비가」는 한국 시인들에게 가장 자주 인용되는 시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이 시와의 영향관계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한국시를 구체적으로 지적하기는 쉽지 않다.
한국 시인들이 「두이노의 비가」를 많이 읽으면서도
릴케의 그 시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6. 존재가 상승이라는 점에서 영웅은 어려서 죽은 아이들과 같다. 상승하다 소멸한 그들은 하강을 알지 못한다. 소녀들은 미래의 영웅들에게 자신을 바치는 희생 제물이 되고 싶어 한다. 그 들도 소멸보다 하강을 더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웅들과 소녀들에게는 인간 존재의 비루 함에 어울리지 않는 미숙함이 들어 있다. 7. 곪은 상처에 시달리며 보람 없이 살다 도시의 골목 에 쓰레기처럼 버려져서 죽어가더라도 인간은 내면에 신전을 세울 힘을 간직하고 있다. 인간의 공간에 수천 년 동안 지속되는 견고한 감성으로 세워 놓은 샤르트르 성당이 있고, 몇 백 년이 지나도 인간의 공간에 여전히 처음처럼 신선한 감성으로 넘쳐흐르는 바흐의 음악이 있고. 더 이 상 내면의 석주를 세우지 않는 시대에도 온몸의 구석구석이 사랑에 젖어 창가에 기대서 있는 버림받은 여자가 있다. 릴케에게는 이것들이 천사의 유혹을 단호하게 거절하고 인간의 고통 속 에 머물러야 할 이유가 된다. 8. 천사와는 다른 방식이지만 동물들도 그들 나름의 열린 세계에 살고 있다. 그것은 부정이 없는 곳이고 어디도 아닌 곳이고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이다. 동 물들은 신을 보면서 영원으로 걸어 들어간다. 인간이 미래를 볼 때 동물은 일체를 본다. 인간은 단 하루도 해석되지 않은 순수공간에 머물지 못한다. 언제까지나 모태 속에서 살고 있는 동물 들은 어머니로부터 분리되는 고통을 모른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날아야 하는 새와 같다. 인간 에게 사는 것은 이별의 연속이다. 9. 인간은 말하는 존재이다. 몸이 없는 천사는 입으로 말하지 못한다. 인간의 언어를 통하여 비탄과 고뇌조차도 형상을 갖춘 사물이 되고, 죽음과 파국조차 도 바이올린 선율에 어울리는 노래가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말로 마음속에 되살려내는 것이 인간에게 위탁된 사명이다. 인간은 말을 하기 위해서 지상에 존재한다. 인간이 사물들 자 신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사물의 본모습을 말할 수 있다는 것에는 천사들도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천사에게는 관조가 중요하지만 인간에게는 경험이 중요하다. 지상의 시간은 무겁 고 괴롭고 긴 경험의 시간이다. 힘겹게 얻어낸 단어 하나가 표현할 수 없었던 경험을 드러내 준 다.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인간의 언어를 기다리고 있다. 인간은 왜 고통스러운 삶을 어렵 게 계속해야 하는 것일까?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지상에 살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 간은 지상에서 가장 사라지기 쉬운 존재이다. 인간에게 모든 것은 한번 가면 다시는 되돌아오 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이 지상에 존재했다는 사실, 그것만은 어떤 일이 있어도 철회할 길이 없 다. 10. 인간에게 고통은 토지가 되고 거처가 되고 장소가 되고 잠자리가 되고 정착지가 된다. 어느 누구도 도시의 도로에서는 안식처를 찾지 못한다. 오만가지 선전들이 북을 치며 호기심을 불러 일으켜도 그곳에 있는 것은 돈의 해부학이 잘라내 놓는 돈의 성기뿐이다. 도시에서는 돈 이 새끼를 치는 것을 생산이라고 부르고 생산을 가르치는 것을 교육이라고 부른다. 시에서 기 성품으로 사들인 교회가 일요일의 우체국처럼 졸고 있는데 그 담벽에는 불사를 선전하는 포스 터가 맥주 광고와 나란히 붙어 있다. 고통 덩어리를 채광하고 화석이 된 분노를 채굴하는 탄식 나라의 성채가 폐허가 된 채 남아 있다. 탄식의 왕족인 탄식의 여자를 따라 고뇌의 나라로 들어 가야 인간은 비로소 생명을 낳는 기쁨의 샘을 발견할 수 있다. 도시에 통용되는 것은 상승하는 행복이지만 인간이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것은 하강하는 행복이다. 환자의 자리에서 보지 않으 면 애인의 참 얼굴을 알 수 없고 죄수의 자리에서 보지 않으면 사물의 참 모습을 알 수 없다. 이 시의 번역자들은 한결같이 이 시에 등장하는 천사를 기독교의 천사가 아니라고 해석하였 다. 손재준 교수는 “릴케의 천사는 기독교적 의미의 천사와는 다르다. 그것은 그 자체로서 완벽 한 절대존재이며 절대미다”(열린책들 판, 399쪽)라고 하였고 김재혁 교수는 릴케 자신이 폴란드 어 번역자에게 보낸 편지를 이 시의 천사가 기독교의 천사와 무관하다는 증거로 제시하였다(책 세상 판, 581쪽). 우리는 기독교에 대한 릴케의 반감을 그의 글들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다. 1913년에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쿠란』을 읽고 릴케는 스페인의 좋은 점은 모두 이슬람에서 왔고 스페인의 나쁜 점은 모두 기독교에서 왔다고 말했다. 1922년에 쓴 『젊은 노동자의 편지』에서 릴 케는 이 지상의 사랑을 질투하여 그것을 감각적인 것이라고 경멸한 것이 기독교가 저지른 가장 고약한 짓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릴케의 이런 말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에는 적지 않은 문제가 있는 듯하다.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두 번째 편지)에서 릴케는 어디 가든지 성경과 덴마 크 시인 옌스 페터 야콥손(1847~1885)의 전집을 가지고 다닌다고 말했다. 『말테의 수기』에는 중 세의 역사와 문학에 대한 릴케의 경탄할 만한 지식이 들어 있을 뿐 아니라 릴케는 중세 시인 루 이즈 라베(1525~1566)의 중세 프랑스어 시를 독일어로 번역하였고, 47세 때인 1922년에는 「마리아의 생애」라는 장시를 써서 동정잉태의 심오한 의미에 대한 릴케 나름의 묵상을 기록하였다. 제2비가에서 릴케는 토비트의 아들 토비아의 여행길에 천사 라파엘이 동족 청년의 모습으로 그 와 동행하였다는 『구약』 외경 「토비트」 5장의 이야기를 인용하였다.
기독교-이슬람의 전통에는 천사를 우주의 구성요소로서, 존재의 한 단계로서 연구하는 천 사학이 있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차이는 요즈음의 중동분쟁 때문에 과장되게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맹자와 장자의 차이보다도 적다. 예수를 신이 아니라 사람으로 보는 것이 그 두 종교의 유일한 차이인데, 이슬람교에서는 동정잉태를 사실로 인정하고 신은 부모를 통하여 인간을 만 들 수도 있고 부모 없이 인간(아담)을 만들 수도 있고 아버지 없이 인간(예수)을 만들 수도 있으 므로 동정잉태는 신이라는 증거로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13세기에 토마스 아퀴나스는 고 전적 천사학을 완성하였다. 『신학대전』은 모두 512개의 문제(2669개 항목)로 구성되어 있는데 1 부 신론이 119 문제이고 2부 인간론이 303 문제(Ⅰ-114, Ⅱ-189)이고 3부 신앙론(예수론)이 90 문제이다. 1부 가운데 50~64 문제가 천사학에 해당한다. 토마스에게 천사학과 인간학은 상호 해명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 천사는 감각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순수하게 지성적이며 정신적인 존재이다. 신체 없는 정신에 대하여 사고실험의 방법으로 연구하는 것은 인간의 특성을 규명하 는 데 도움이 된다. 토마스는 생명을 지닌 것이 생명체가 되게 하는 생명다움을 영혼이라고 하 고 식물 영혼과 동물 영혼과 인간 영혼을 구별하였다. 인간 영혼은 보편인식과 개념사고를 본 성으로 하는 지성이고 이성이다. 존재는 물질과 생명과 정신의 세 단계로 구성된다. 인간은 있 다는 말과 보인다는 말과 만져진다는 말을 동의어로 사용하나, 남에게 보이는 내가 나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신은 선과 악, 진리와 허위를 구별하게 하는 마지막 근거이면서 동시에 지성으로 파악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단적인 비합리이다. 토마스가 말하는 신은 지적 탐구를 지적 탐구로 올바르게 성립시키는 무한 존재이다. 신은 신체 없는 무한 지성이고 천사는 신체 없는 유한 지성이다. 인간의 지성은 신체 와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감각과 기억과 경험의 단계를 거쳐 인식하지만 신체 없는 천사의 지성 은 인식을 위해 감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천사의 지성은 수면, 피로, 권태 같은 신체 상태에 좌우되지 않고 인식한다. 천사의 사유는 이미지 없는 사유이므로 주어와 술어를 결합하여 추 리하고 판단하지 않는 관상(觀想)이다.
신체가 없는 천사는 음성을 통해 생각을 전달하지 못한다. 천사는 자기 정신 안에 있는 개념 을 다른 정신에게 조명하여 다른 정신 안에 태어나게 할 수 있다. 천사들은 말하지 않으면서도 서로 다른 천사를 가르칠 수 있고 다른 천사에게 배울 수 있다. 천사는 인간의 정신 안에도 어 떤 개념이 태어나게 할 수 있다. 천사들은 언어를 교환하는 대신에 사랑과 빛

을 교환한다. 순수하게 지적인 인식에 기초한 천사의 사랑은 존재의 아름다움을 향한다. 천사들은 신에 게 진리의 빛을 조명 받으며 신의 무한한 아 름다움을 사랑하고 신의 아름다움을 분유하 는 존재의 아름다움을 사랑한다. 그러나 천 사의 의지가 영원법은 아니므로 천사의 자유 의지가 영원법을 위반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천사에게는 무지나 정념에 의한 죄가 있을 수 없고 따라서 거짓과 꾸밈, 악한 습관 따위가 있을 수 없다. 다만 천사에게는 자신 의 탁월성 때문에 자신의 지성을 신적인 무 한 지성이라고 착각하여 신을 우주의 중심에 서 주변으로 밀어내려고 할 위험이 있다. 천 사에게는 오만과 질투의 죄를 범할 가능성 이 남아 있는 것이다. 기독교-이슬람의 전통 에서는 오만과 질투의 죄를 범한 타락 천사를 악마라고 한다. 토마스는 “악이 존재하면 신이 존 재한다(Si malum est, Deus est, 『대이교도대전』 Ⅲ-71)”라고 말했다. 토마스에 따르면 인간의 본성은 극도의 미완성이라는 데 있다. 인간은 실재하는 진리를 지성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 에 평생을 통해 인격을 완성해 나가야 하며 이렇게 사는 것만이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사는 인 간의 길이다. 악이 없으면 인간의 길은 고유성을 상실하고 천사의 길이나 동물의 길과 통합되어 버릴 것이다.
토마스의 천사학에 비추어 볼 때 「두이노의 비가」가 기독교-이슬람의 전통 위에 서 있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할 것이다. 엘리엇은 기독교 신자라는 신앙 고백을 하였으나, 「황무지」에는 인도사상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 있으므로 한국 시인이 접근하기 쉽다고 할 수 있 고 발레리는 다 빈치의 제자이므로 희랍 신화라는 가벼운 가면을 벗기면 세계 공통의 과제인 미적 근대성의 문제로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두이노의 비가」는 기독 교-이슬람의 전통을 철저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파악이 불가능한 시이다. 한국 시인들이 많이 읽으면서도 정작 깊은 영향을 받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이 슬람의 전통이든 불교-유교의 전통이든 근대와 중세의 상호조명은 앞으로 한국문학의 궁색을 타개하는 길을 묻는 데 기여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