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순정함, 모어의 순정함,시의 순정함 - 윤동주 시인과의 가상 인터뷰
균형과 조화의 삶을 찾아서 - 행복한 의사를 위한 인문학
특집을 기획하며｜우리 시대 문학 상상력의 코드들 ①진짜 괴물은 누구인가- 소설 속에는 그것이 산다, 그리고… ②무엇이 우리를 웃프게 하는가- 소설 속 우리 시대 아이러니의 대표 형상들 ③‘혼자’만의 자리 ④탈조선의 어떤 감각,‘싫어서’라니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 시 「조용한 일」 중 변용
‘대전발 0시 50분’을 오르내리던 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첫 번째｜일기,그 비밀의 방 두 번째｜알렉시예비치와 김종삼이 기록한 것 세 번째｜글과 리듬 네 번째｜드라이
제24회 대산문학상,한국문학의 풍성한 수확을 향한 출발 제24회 대산문학상｜예 / 심 / 평 2016 대산창작기금｜자유로움과 도발과 섬세함,젊은 작가들과의 조우 2016 대산창작기금｜수혜소감 및 심사평
장맛비가 이어주는 매듭, 님 웨일스와 김산과 이상(李箱)
프리웨이 5번, 워노-원,그리고 캘리포니아 1번 주도(州道)
첫 번째｜일기,그 비밀의 방
글 차윤옥 ㅣ 시인, 한국문학발전포럼 사무총장, 계간 《문예》
편집주간. 1959년생
시집 『노래하는 삶』 『순간포착』 『맞닿는 평행선』 『두꺼비집』 등
그렇게 일기장은 혼자만 들어가고 나올 수 있는 나만의 비밀스런 방이되었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아무도 초대하지 않는 온전한 나만의 공간이었다. 뜻하는 대로 물리적 공간을 확보할 수 없었기에 16절공책이라도 마음껏 누려보고 싶은 비밀이 아니었을까. 동시에 일기라는 최초의 글쓰기 형태가 결국 나를 자유롭게 할 것이라는 일종의 복선도 숨겨져 있었으리라.
나는 형제가 많고, 아들이 귀한 집에서 성장했다. “여성이 픽션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한다”고 버지니아 울프(영국 1882~1941)가 한탄했던 것처럼 나 역시 돈과 ‘자기만의 방’을 갖지 못했다. 양보가 당연하고, 희생이 희생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분위기에서 살다보면 스스로도 일정 부분 체념하게 되는 경우가많았다.
그 와중에 일종의 돌파구가 되어준 것이 있다. 바로 일기쓰기였다. 친구나 피붙이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고민이나 생각을 일기에 기록했다. 문학소녀, 문학소년의 꿈을 품었던 이라면 누구라도 그랬겠지만, 좋아하는 시를 적어 두고, 그것을 보면서 몰래 암송했다. 언젠가 꼭 이루리라 다짐하며 무모한 야심을 적어두고 결의를 다지기도 했다. 그렇게 일기장은 혼자만 들어가고 나올수 있는 나만의 비밀스런 방이 되었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아무도 초대하지 않는 온전한 나만의 공간이었다. 뜻하는 대로 물리적 공간을 확보할 수 없었기에 16절 공책이라도 마음껏 누려보고 싶은 비밀이 아니었을까. 동시에 일기라는 최초의 글쓰기 형태가 결국나를 자유롭게 할 것이라는 일종의 복선도 숨겨져 있었으리라.
작가는 거의 대부분이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함으로써 글을 쓰고,
작가가 된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시를 쓰리라 마음먹은 후엔 과거의 일기장이
좋은 자산이 되었다. 틈틈이 오랫동안 저금해 놓은 생각과 감성들이
새로운 자양분이 되어준 셈이다
버지니아 울프와 같은 나라에서 1세기 앞서 태어난 또 한명의 위대한 여성문학가 제인 오스틴(1775~1817)에게도 자신만의 방은 없었다. 그녀는 집의 거실에 있는 작은 책상에서 글을 썼다고 한다. 가족 외에도 많은 이들이 오가는 거실에서 분명 작업에만 집중할 수는 없었으리라. 삐걱거리는 문이 손님의 방문을 알리는 경보가 되었고, 문에서 기척이 나면 잽싸게 자신의 원고를 숨겼다고 한다. 그녀는 일부러 문에 기름칠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여자가 글을 쓰는 것을 반기지도, 높이 쳐주지도 않던 시대라 자신이 글을 쓴다는 것이 알려져서 좋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회적 편견을 극복하기 얼마나 버거웠을까를 생각하면 그녀의 행동이 충분히 이해된다.
어른이 되고부터는 매일 꾸준히 일기를 쓰지 못했다. 일기장이라는 작은 방을 생각하기엔 발디딘 현실의 사회가 너무 복잡하고 컸다. 그래도 잊고 싶지 않은 일이 생기거나 괜히 울적할 때에는 일기장을 찾았다.
작가는 거의 대부분이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함으로써 글을 쓰고, 작가가 된다고 한다. 본격으로 시를 쓰리라 마음먹은 후엔 과거의 일기장이 좋은 자산이 되었다. 틈틈이 오랫동안 저금해 놓은 생각과 감성들이 새로운 자양분이 되어준 셈이다. 시간이 지나, 선명하지 않은 기억들이 과거의 추억을 환기시키고, 같은 사실의 기록을 보아도 그때 느낀 감정과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면, 그 방에 나 혼자 있었던 것이 맞나 하는 의아심이 들 때도 있다. 모르는 사이낯선 누군가가 다녀간 것처럼 과거와 현재의 나는 좀처럼 같은 인물로 느껴지지 않는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자연스럽게 혹은 의도적으로 변했을 부분 부분들이 모여 어쨌든 지금의 내가 되었을 게다.
시도 쓰고, 잡문도 쓰고, 여기저기 졸고를 기고하다 보니 막상 일기를 잘 쓰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다이어리에 빼곡하게 들어선 일정들 말고 하루를 어떻게 살아냈는지 알 수 없을 때도 많다. 몸은 분명 바빴는데, 시간이 지난 후 현재를 어떻게 기억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아마도 녹슬었을지 모르는 일기장의 문을 다시 한 번 열어 보아야겠다. 삐걱하고 문이 열리는 순간, 그안에 숨어 있던 내가 화들짝 놀라 공책을 어디로 숨겨 버릴는지도 모르겠다. 경첩에 기름칠이라도 해야 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