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순정함, 모어의 순정함,시의 순정함 - 윤동주 시인과의 가상 인터뷰
균형과 조화의 삶을 찾아서 - 행복한 의사를 위한 인문학
특집을 기획하며｜우리 시대 문학 상상력의 코드들 ①진짜 괴물은 누구인가- 소설 속에는 그것이 산다, 그리고… ②무엇이 우리를 웃프게 하는가- 소설 속 우리 시대 아이러니의 대표 형상들 ③‘혼자’만의 자리 ④탈조선의 어떤 감각,‘싫어서’라니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 시 「조용한 일」 중 변용
‘대전발 0시 50분’을 오르내리던 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첫 번째｜일기,그 비밀의 방 두 번째｜알렉시예비치와 김종삼이 기록한 것 세 번째｜글과 리듬 네 번째｜드라이
제24회 대산문학상,한국문학의 풍성한 수확을 향한 출발 제24회 대산문학상｜예 / 심 / 평 2016 대산창작기금｜자유로움과 도발과 섬세함,젊은 작가들과의 조우 2016 대산창작기금｜수혜소감 및 심사평
장맛비가 이어주는 매듭, 님 웨일스와 김산과 이상(李箱)
프리웨이 5번, 워노-원,그리고 캘리포니아 1번 주도(州道)
③‘혼자’만의 자리
글 박인성 ㅣ 평론가. 1985년생
|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위문화로서의 ‘혼자되기’는 분명 보다
첨예한 의미구성과 해석의 가능성을 지닌다. 가능성의 차원에서
주목하게 되는 ‘혼자’의 자리는 어디일까? 그것은 손쉬운 ‘유머’가
아니라 해석에 있어 모호한 ‘아이러니’의 장소에 있다.
온갖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유래 없이 고독한 사회. 그처럼 다소 모순적으로 보이는 상황이 우리를 둘러싼 소위 ‘초연결사회(hyper-connected society)’의 단면이다. 실시간 채팅 프로그램과 SNS,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어디에서나 대화와 논쟁이 가능한 사회. 그러나 사실 초연결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종류의 연결이 엄밀한 의미에서의 소통과 공감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이때의 연결성은 어디로나 열려 있지만, 오히려그 열림은 어디까지나 구심적이며 자기지향적인 열림, ‘나’를 크게 벗어나지도 해치지도 않는 내재적인 세계로의 제한적인 열림이다. 트위터의 리트윗(retweet) 기능처럼 여러 입장과 의견들이 손쉽게 동기화(synchronization)되는 만큼, 온갖 연결성은 주체의 무제한적 확장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의 고정점에서 취사선택되는 동일시의 환상에 사로잡히기 쉽다. 다양성의 용광로인줄 알았던 온라인에서의 정체성은 손쉬운 동일시 쪽으로 미끄러지기 쉬운 거울의 반사면이 되어주는 것이다. 독자성과 개별성을 보다 더 쉽게 손에 넣기 위해 사람들은 타인들을 통해 자기를 더 잘 인식하는 방식으로 ‘함께’ 있는 셈이다.
상시적인 연결에 참여하기 위하여 로그인(log-in)된 아이디(ID)는 취사선택된 정체성의 한 가지 가면이다. 그러나 이처럼 가면을 쓰고 ‘함께’ 있기를 택할지라도, 자신의 의지대로 분리되지 않는 방식의 과도한 연결은 오히려 언제나 가면을 벗을 수 없게 되는 구속을 낳는데 이는 지나친 자극이자 고통일 수 밖에 없다. 소통의 목적으로 상정되었던 공감 역시 한없이 연성화된 방식으로 희석된다. 게다가 더 이상 오프라인과 온라인이 이분법적으로 구분되지 않는 삶에서 소통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와 같으며, 그러한 의무를 방기한 채 혼자가 된다는 것은 오히려 대단한 결단처럼 보이는 것이다. 따라서 느슨한 ‘함께’로부터 벗어나, ‘혼자’임을 강조하는 문화적인 변화가 주목받는 것 또한 우리가 처한 시대의 흥미로운 한 가지 단면이다. 가족의 해체만이 아니라, 연애와 결혼에 대한 부담 속에서 차라리 싱글 라이프를 선택하고 선호하는 청년 세대의 분위기, 억압적인 집단 문화에 대한 거부감으로 인해 차라리 혼자이기를 바라는 반발심리 또한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는 주류문화와는 구별되는 일종의 하위문화로서의 문화적인 코드화를 획득한 것이다.
이러한 문화적 코드의 독특한 점은 일반적인 고립과 소외에 대한 두려움과는 사뭇 다른 선택적 영역에서 ‘혼자되기’의 의미를 구성하는 태도의 변화다. 소위 ‘취향으로서의 혼자되기’가 문화 내부에서 중요한 삶의 코드로 발견된 것이다. 흔히 회자되는 ‘혼밥’과 ‘혼술’은 더 이상 크게 놀랍지도 부끄럽지도 않다. 소위 ‘혼자 놀기’의 난이도가 단계화되어 있고, 그 중에서도 높은 단계의 미션을 해내고서 이를 SNS나 인터넷 커뮤니티에 ‘인증’하는 것도 하나의 놀이 문화가 되었다. ‘혼자입니다.
존중해주세요’로 대변될 이러한 태도가 상대적으로 집단 내부의 생활양식을 강조하는 우리 사회 내부에서 개인주의의 재발견으로 규정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러한 태도 내부에는 여전히 혼자라는 것에 대한 비정상성 혹은 부끄러움의 과도한 의식화가 전제되어 있다. ‘혼자’를 선택하는 것은 의식적이며 자의적일 수 있지만, 그것을 문화적 코드로 소비하는 경향은 일종의 자기비하를 통한 유머에 집중되어 있다. 즉, ‘혼자되기’에 내포된 다양한 정서가 계층적인 문제로 첨예해지기 이전에 하나의 주류 문화에 대한 적대성이 아니라 ‘혼자들’끼리의 느슨한 공감대로 수렴하기 때문이다. 다시금 모종의 연결성이 ‘혼자’라는 의미에의 해석적 특권을 점유해버리는 것이다. ‘혼자’라는 텍스트에 대한 메타-텍스트는 여전히 ‘함께’의 위상을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위문화로서의 ‘혼자되기’는 분명 보다 첨예한 의미구성과 해석의 가능성을 지닌다. 가능성의 차원에서 주목하게 되는 ‘혼자’의 자리는 어디일까? 그것은 손쉬운 ‘유머’가 아니라 해석에 있어 모호한 ‘아이러니’의 장소에 있다. 우선 ‘혼자되기’의 문화적 코드와 만나는 문학적인 상상력에 주목해보는 것은 흥미로운 작업이다. 일반적으로 문학에 있어서 ‘혼자’란 아이러니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저자’ 개념이 구체화된 근대문학에 있어 텍스트는 그것이 쓰이는 순간 철저한 개인의 언어로 출발할 수밖에 없으며,문학을 써내려가는 과정 역시 지극히 고독한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문학에 내포된 언어의
지향성, 그리고 내재된 소통의 구조는 언제나 타자의 존재를 발견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특히 서사문학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한데, 사건의 연쇄와 그 재현으로 특징되는 서사물에서 주된 사건의 동력은 타인과의 만남 및 ‘갈등’으로부터 야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혼자되기에 주목하는 서사적 경향은 문학에 있어서도 일반적인 것이 아니다. 사건의 연쇄 속에서 어디까지나 ‘혼자’로 남는다는 것은 다소간 작위적인 상황 설정에 의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로빈슨 크루소』다. 무인도의 로빈슨은 어느 날 해변에서 발견한 발자국에 깜짝 놀라는데, 언뜻 그것이 자기 발자국인지 타인의 것인지 구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닌 제3자라는 유사-객관적인 시선을 빌리지 않으면 혼자라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광기에의 공포나 독아론적인 세계의 감옥이 될 뿐이다. 따라서 문학은 ‘혼자’ 쓰되 결코 혼자일 수 없는, 동시에 ‘함께’ 읽을 수는 있지만 동일하게 읽을 수는 없는 언어적 모음으로서 언제고 아이러니한 위상을 지닌다.
‘혼자되기’의 상상력이 서사의 일반적 경향과 구별되어 보다 구체적으로 작동하게 된 것은 것은 분명 최근의 문화사적인 변화와 관련되어 있다.
특히 한국문학에서 ‘취향으로서 혼자되기’는 여전히 외부 시선과의 충돌이라는 지점에서 의미화된다. 윤고은의 단편소설 「1인용 식탁」(『1인용 식탁』, 문학과지성사, 2010) 역시 핵심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는 데 있다. “한 벌의 수저가 올려진 밥상은 권투가 벌어지는 링과 같다. 여자는 그 위에 홀로 서서 날아오는 시선을 맞는다”(9쪽).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했던시도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유’가 아니라 다른 방식의 연결로 대체된다. “내가 배우고자 했던 것은 혼자 자유롭게 먹는 방법이었으나, 정작 내가 얻은 것은 수강 기간 동안 내가 혼자 먹는 유일한 사람이 아니라는 위안이었다”(43쪽)는 결론이다.
‘혼자들’에 대한 발견은 연대를 통한 극복이라기보다, 결코 ‘혼자’로는 남을 수는 없다는 타협적 결론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결론이 느슨한 공감대에 지나지 않음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 문학적 상상력은 ‘혼자’에 대한 아이러니한 이해의 단초를 제공해준다. ‘혼자’라는 느슨한 의미론적 위상은 그 모호함만큼이나 언제고 탁월하게 과대평가될 수도, 우스꽝스럽게 과소평가될 수도 있는 셈이다.
따라서 ‘혼자’의 자리가 어디까지나 ‘함께’에 의해서 조율되고 타협적으로 구성되는 것과 달리보다 첨예하게 ‘혼자’임을 주장하는 상이한 방식들에 주목하고자 한다. 우선은 ‘혼자’에 대한 다소 과대평가된 대상화의 방식이다. 특히 여러 ‘혼자 하기’의 코드 중에서도 ‘혼자 먹기’가 지니는 특권적인 위상은 ‘유머’와는 다른 영역에서 혼자의 자리를 점유한다. 일본의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에서 주인공 ‘고로’ 씨는 철저하게 혼자 식당을 찾아가 철저하게 혼자만을 위한 식사를 한다. ‘고로’의 소위 ‘먹방’이 시선을 빼앗는 핵심은 음식을 먹는 순간만큼은 시간이나 장소, 사회, 타인에게도 구애받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과 허기에만 충실한 식사의 시공간을 창안하고 있다는 것이다. 「1인용식탁」이 도달할 수 없었던 결론이자, 식사의 순간에조차 많은 것들에 구애받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꿈꾸는 아주 사소한 자기 치유의 한 형태다. 최근 케이블 채널 O’live에서 방영중인
〈조용한 식사〉의 경우 이러한 혼자만의 먹방을 보다 숭고한 대상으로 격상시키는데, 바로 포르노그래피적인 전시 속에서 어떤 언어도 편집도 없이‘혼자’만의 순간을 절대화한다. 지정된 시간 동안 출연자들은 혼자만의 테이블에 앉아서 아무런 말도 없이 쩝쩝 거리며 식사를 마칠 뿐이다. 어떤 외부로부터의 침입에도 안전함을 보장받는 이러한 절대적 시공간의 창출이야말로 ‘혼자’라는 환상에 대한 포르노그래피적인 전시(display)가 된다.
우리는 〈고독한 미식가〉나 〈조용한 식사〉의 ‘혼밥’이 과도한 스펙터클이라는 것을 안다. 동시에 우리는 앞서 ‘혼자들’의 발견이 일종의 타협이라면, 혼자에 대한 스펙터클은 나르시시즘적인 이미지를 외연화한 일종의 기만임을 알고 있다. 반대로 말하자면 초연결사회를 전제하고 있는 지금 시대에 진정한 의미에서 ‘나는 혼자다’라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한 발화이기 때문이다. 이는 생존과 경쟁으로부터 물러나 거의 죽음을 파편적으로 경험하기 위해 수행되는 가상적 조건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혼자의 자리는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으며, 따라서 혼자라는 사실조차 인식되지 않는다.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현실의 ‘공백’이자 ‘작은 죽음’으로만 출현 가능하기 때문이다. 김금희의 소설 「조중균의 세계」(『너무 한낮의 연애』, 문학동네,2016)에서 여럿 사이에서 존재했지만 철저하게 혼자였던 조중균의 존재는 문학이 보여줄 수 있는
‘혼자의 자리’를 지시하는 데 있어 뛰어나게 암시적이다. 조중균에 대한 기억은 누구에게도 해석적인 특권을 부여하지 않으며, 그저 “문장과 시와 드라마는 있지만 이름은 없는 세계”(71쪽)로 남을 뿐이다. 그것은 ‘지나간 세계’일 뿐이며, 여럿 사이에 합치될 수 없는 해석적 공백으로서의 진정한 ‘혼자’의 자리인 셈이다. 심지어 그 ‘혼자’의 자리는 조중균 본인조차 점유할 수 없는 세계다.
따라서 문학적 상상력은 ‘혼자’를 하나의 방어막으로 활용하는 자기동일시나, 느슨한 ‘혼자들’의 연대에서 벗어나 진정한 의미에서의 ‘혼자만의 자리’로 향한다. 혼자는 언제나 고독하다. 그러나 이때의 고독(孤獨)이란 하나의 완결형태로 제시되 는 것이 아니다. 孤가 고아를, 獨이 홀어미를 가리킬 때, 그들은 고독이라는 단어 안에서 여전히 혼자이지만 그저 단속적인 형태로만 만난다. 문제는 그들 사이의 잠재적인 만남을 앞서와 같은 느슨한 연대, 다른 형태의 가족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그들은 유사하지만 결코 동일자는 아니다. 따라서 오히려 주목해야 하는 것은 孤/獨 사이에 암시되는 사이기호(/)이자 인접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메워질 수 없는 둘 사이의 절대적인 거리다. 오직 그 거리와 공백에 의해서만 전혀 다른 형태의 관계와 만남의 가능성은 움튼다. 상상적인 소세계만을 즐기는 나르시시즘과 달리 절대적인 고독함을 느끼는 ‘혼자’는 여전히 어떤 만남에 대한 준비과정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진정한 만남이란 그저 ‘혼자’와 유사한 ‘혼자들’ 과의 만남이 아니라, 결코 아직까지 의미화 되지도 이름붙일 수도 없는 치명적인 타자와의 만남임을 알아야 한다. ‘혼자만의 자리’는 오히려 자기도 몰래 드리운 ‘타자의 자리’임을 알기 위한 예비적장소다. 그렇다면 문학은 그저 혼자이기 위한 언어도, 연결되기 위한 대화도 아니다. 문학은 그저‘지나간 세계’의 자리를 지시할 뿐이다. ‘혼자’의 자리는 거기 눈앞에 ‘있는’ 자리가 아니라, 이미 지나가 버려서 ‘없/있지 않는’ 형태로만 드러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혼자’는 아이러니라는 수사학을 빌려 보다 강력하게 문학의 자리에 다가선다. 그리고 문학은 ‘혼자되기’라는 문화적 코드에 ‘혼자만의 자리’를 암시하기에 여전히 유효한 형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