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기행문
유럽문학기행문
글쓴이 : 김애란
날짜 : 12.03.07|조회 : 8488
이것은 '기행문에 대한' 기행문이 아니므로 여행과 태도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서 각설한다. 대신 여행 전 내가 가졌던 공포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그것은 '익숙한 것에 대해 정직하게 반응하기란 얼마나 힘든가'였던 듯 싶다. 나는 유럽을 한번도 가본 적 없으므로 유럽에 익숙할 리 없다. 문제는 익숙한 '대상'이 아니라 익숙한 '문맥'이다. 감동해야 되기 때문에 하는 감동은 가짜다. 그리하여, 머리보다 먼저 도망치려 하는 나에 뒷발 하나를 바닥에 꽉 붙들어 맨 채, 한번 더 괘씸하게 단언하자면, 나는 과장이 싫다. 촌스럽기 때문이 아니라, 공감하지 못하므로 싫다.
이렇게까지 얘기해 놨으니, 정직한 반응에 대한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기행문을 써야 하는 나의 손은 벌써 나에게 눈을 흘기고 있다. 말을 물리고 손을 달래자니 이번엔 당신이 내게 눈을 흘길 것 같다. 다른 이야길 해보자.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비행기를 탔다. 역사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왔지만, 과학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비행기 안, 양쪽에서 역사와 과학이 나를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비행기를 타는 일쯤은 대수롭지 않은 듯, 태연한 척 하기엔 하늘이 너무 아름다웠다. 유리창에 코를 바싹대고 물, 공기, 태양을 본다. 진리가 눌변 속에 전달되듯 모든 절경은 무뚝뚝한 데가 있다. 일본을 경유해 영국에 갔다. 공항에서 나를 심사하는 사람들이 자꾸 내게 '누구'냐고 묻는다. 나는 나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했다. 그것은 나를 자꾸 '바깥'이게 만들었고, 조금은 위축시켰다. 나를 멀건히 바라보는 백인 아이의 눈. 아이의 호기심. 아이의 적의. 나는 내가 이방인이라는 것을 자꾸 잊는다. 이것은 '신나는 관광'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흑인이 청소한 거리를 걷고, 아랍인이 만든 빵을 먹으며 가끔 한국의 정치 상황을 궁금해한다. 모국의 안부는 안녕하신가. 숙소는 워털루역 근처에 있었고, 날씨는 흐렸다.
내가 이야기 해보지 못한, 스치고, 지나가는 대부분의 영국인들은 겸손하고 예의 발랐다. 나는 예의바름이란, 거절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무서움을 포장하는 방법 중의 하나라고 생각해 왔었다. 그러나 그 포장은 또 얼마나 세련됐는가. 우리가 영국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sorry'였다. 하루쯤 지나자 우리도 의당, 그래야 되는 것처럼 그들에게 자주 'sorry'라고 했다. 그들이 하는 것을 우리도 하니, 약간의 안도가 들었다. 한번 더 나는 '바깥'이다.
영국에서 우리가 가장 수다스러웠던 순간은 숙소에서 알게 된 다비데라는 이탈리아 청년과의 대화에서 였다. 다비데는 80년 생으로 나와 동갑이었으며, 쾌활하고 솔직했다. 그는 검표원을 피하는 자신의 꾀에 대해, 군대에 대해, 만화에 대해 얘기했다. 내가 그가 가진 담배갑에 새겨진 '디아나'라는 이름의 뜻을 묻자, 그는 '잘 모르지만 뭐, 담배 회사 사장 애인 이름쯤 되지 않을까'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다비데와의 혹은 후에, 독일의 후베 선생님과의 대화에서 내가 왜 즐거웠던가를 생각해본다. 내가 이국 땅에서 반가워했던 것은 무엇이었나. 그것은 영국적인 것도, 독일적인 것도, 한국적인 것도 아닌 '인간적'인 것을 발견할 때가 아니었을까. 영국에도 기차간에서 쓸데없이 질문하는 어린 딸이 있고, 성의 없이 대답하는 아버지가 있다. 외국에도 음치가 있고, 마이크를 놓지 않는 Tom이 있다(노래방 기기가 있는, 모든 인종과 연령이 어울려 술을 마시는,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술집이 있었다) 아울러 소통의 어눌함은 이상하게 상대방을 선량해 보이도록 해주었다. 풍경만큼 아름다운 사람들이 내가 다녀온 '거기' 있었다. 물론 유럽에는 사람만큼 더러운 풍경도 더러 있다.
영국에 있는 5일 동안 토마스 하디와 에밀리 브론테의 생가, 런던 시내, 솔즈베리, 브라이튼 등에 들렀다. 그 중 기억에 남는 곳은 '폭풍의 언덕' 배경 무대인 하워드이다. 마을의 공동묘지에 둘러 싸여 있는 브론테의 생가에서, 브론테가 쓰던 자잘하고 섬세한 장신구, 옷, 거울 등을 보며, '브론테도 여자였구나...' 싶어 반가웠다. 진열장에는 브론테의 머리카락도 보관돼 있었다. 우리는 작가라는 이름의 가정 하에 훗날 우리의 체모 따위가 진열되는 불경스러운 상상과 농담을 하며 낄낄댔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작가의 공간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하중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에밀리 브론테의 생가는 독일에 있는 괴테의 생가보다 검소했다. 괴테의 생가는 그 규모에서 소품에 이르기까지 윤택하기 그지없어, 사실 신경질이 났었다. 그것이 괴테의 잘못이 아닌데도 말이다. 우리는 폭풍의 언덕을 산책하며 허구와 실제의 겹치는 작품 무대 안에 포개져 있었다. 그런데 한창 감동하려던 중, 언덕을 내려오던 우리는 아무도 없고 황량한 언덕 꼭대기에서 어이없는 물건을 하나 발견했다. 그것은 실제로 바람이 많이 부는 폭풍의 언덕에, 홀로 버려진 채 파르르 떨고 있는 성인잡지의 한 조각이었다. 선정적인 포즈의 여자들이 마치 아프리카에 떨어진 콜라병처럼 거기 있었다. 그것은 우리를 유쾌하게 해주었다. 나는 어떤 전체, 어떤 규칙을 산뜻하게 흔들어 놓는 그러한 나비들이 못 견디게 좋다.
프랑스는 영국보다 밝다. 영국보다 지저분하며, 영국보다 소비적이다. 게으르고 무례해서 정이 가는 그런 나라다. 겨우 3일의 인상만으로는 그랬다. 첫날 베르사이유에 갔다. 왕의 정원을 본다. 왕의 욕망을 본다. 이렇게 큰 정원을 갖고 싶었을 정도의 사람이면, 얼마나 큰 외로움을 갖고 있었던 사람이었을까 싶다. 모든 나무들은 신령스럽다. 그리고 막막하다. 나는 '이런 데는 정말 스캔들 없었으면 지루해서 못살았을 것 같아'라고 중얼거린다. 우리는 자전거를 탔다. 다른 곳에선 풍경을 수동적으로 '보기'만 했는데, 이번에는 풍경과 살 섞는 기분이 들었다. 가랑이가 찢어지도록 나는 달리며 웃는다. 왕의 정원에서 경박스럽게 깔깔대며. 그 경박함을 기분 좋아하며.
프랑스에는 번역가 한유미씨가 계시다. 한유미씨의 소개로 우리는 파리 7대학의 한국학과 선생님들과 학생들을 만났다. 이분들을 뵌 느낌은, 뒤에 독일의 본대학 한국학과의 선생님들을 뵌 느낌과 비슷했다. 우리말의 전도사로 내가 모르는 삶과 가치에 힘을 기울이고 계신 분들. 여행에서 우리가 무언가 배울 게 있다면 그것은 풍경에서라기보다 사람에게서 배우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싶다. 그 풍경과 관계하고, 그 풍경을 의미 있게 하는 것은 결국 사람일 것이다. 한국학과 학생들 중엔 한국 입양아들이 몇몇 있었다. 그들은 건강했고, 입양 사실을 부끄러워하지도 감추려고 하지도 않았다. 실제로 한 사회가 개인을 불구로 만드는 건 상황보다 '시선'인 경우가 많다. 우리는 서로 수줍어했고, 서로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몸을 기울였다.
파리 퐁피두 센터 앞, 거리에는 책방이 많다. 주로 화집을 파는 곳으로 다른 도시들 보다 가격이 싸다. 한국에선 웬만한 화집 가격이 만만치 않았으므로, 우리는 호들갑을 떨었다. 마치 그렇게 해야 죽은 작가들의 체면이 서기라도 하는 듯, 우리의 구매는 결코 점잖지 않았다. 내 옆에 모딜리아니가 있고, 내 앞에 이곤 쉴레가, 내 뒤에 마그리트가 있었다. 그것도 아주 싼값에 있었다. 나는 화집을 욕심껏 집었다. 그런데 숙소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화집을 펼쳐 든 나는, 내가 산 화집이 그림 몇 개가 거꾸로 인쇄돼 나온 파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황망히 벽을 바라보았다.
스위스를 거쳐, 독일에 갔다. 우리에게 독일은 알베르트 후베 선생님으로 기억되는 나라다. 후베 선생님은 독일 본대학의 한국학 교수로, 마르고 바바리가 잘 어울리는 할아버지다. 우리는 그곳에서 송구스러울 정도로 환대를 받았다. 독일 어느 어느 지명에 뭍은 한국 역사의 흔적들에 관한 설명은(예컨데 국빈 대접을 받지 못한 군사 정권이 묵은 호텔이나 만국기를 스스로 달아 보도한 기자들의 일화), 독일의 찬바람 속에서 애달프게 다가왔다. 도서관 방문과 라면 파티 등 본대학에서의 공식 일정이 끝난 뒤에도, 후베 선생님은 우리를 라인강에 데려가주고 싶어하셨다. 라인강은 막 노을이 지고 있었고 우리는 폴짝거리며 유람선에 올라탔다. 우리는 화제를 만들어보고 싶었는지, 후베 선생님께 '한국 교과서에 라인강의 기적이란 게 나와요. 우리도 독일처럼 열심히 일해서 잘 살자는...' 이라고 말했다. 후베 선생님은 더듬 더듬 어색한 억양의 한국어로 대답하셨다. '너무 잘 살아서 벌 받았어요...'. 잠시동안 우리 사이엔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그렇게 말할 줄 아는 그가 좋았다.
역으로 가는 길, 후베 선생님은 우리를 배웅해 주셨다. 최영오씨가 '선생님 무거운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라고 말했다. 후베 선생님은 웃으며 '얼마나 무거운데 그래요?' 대꾸하셨다. 최영오씨가 남북의 상황에 대한 의견을 여쭈자, 선생님은 '너무 무거워 혼자 들 수 없네요...' 라고 대답하셨다. 그리고는 조분 조분 방북 경험과 느낌들을 우리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나는 나라마다 '농담'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과장이 싫다고 했던 내가, 딱 한번 꼭 과장을 해야 한다면, 그것은 라인강의 크기나 에펠의 높이가 아닌 따듯함에 관한 것이어야 할 것이다. 본 대학에 가기 전, 들렀던 하이델베르크도 좋았다. 나는 폐허가 좋다. 역사를 역사답게 만드는, 벌레 먹은 무엇이 좋다.
숙소에서 마지막 날, 우리는 둘러앉아 옛날 이야기를 했다. 여행 내내 우리는 문우의 츄리닝을 보고, 뻣친 머리를, 습관을, 결함을, 상처를 본다. 그러면서, 과거 도시락 반찬이라던가, 가수 소방차의 디스코 바지에 대해, 혹은 이상아나 하희라가 코팅된 연습장과 반장 선거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공감하고, 아, 내가 살고 있었을 때, 너도 살아 있었구나 감동한다. 그리곤 돌아가고 싶은 사람과 남아있고 싶은 사람이 섞여 뒤척이다 잠이 든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경구 앞에서의 주눅들음. 카달로그적 지식에 대한 창피스러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여행에서 내게 더 중요했던 건, '봤다고 해서 안다고 하지 않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초행자로서의, 단기체류자로서의, 애꾸눈 여행. 그리하여 나는 유럽을 오해하고 돌아왔으나, 값이 싼, 그림이 거꾸로 된 하나밖에 없는 화집 파본처럼, 나의 경험은 잘못되었기 때문에 소중하다. 오해가 이만큼 수다스러우니, 지금 머리를 긁적이는 수밖에 없겠다.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기회를 준 대산문화재단에 감사드린다. 그리고 머리 큰 대학생 넷을 데리고 다니느라 너무나 애쓴 대산문화재단의 전성우씨께도 감사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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