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기행문

일본문학기행문
글쓴이 : 김명호 날짜 : 12.03.07|조회 : 7071



1. 여행기를 시작하며
며칠 전부터 김사량의 '노마만리(駑馬萬里)'를 틈틈이 읽고 있습니다. 월북했다고, 연안파라고 남과 북 어디에서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김사량. 그의 항일 중국 망명기인 '노마만리'에는, 중국 곳곳에서 만난 인간 군상에 대한 관찰과 조국 광복에 대한 염원이 곳곳에 배여 있습니다. 감히 김사량의 그것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저도 이번 대산문화재단의 후원으로 2월 5일에서 14일까지 일본을 둘러보면서, 깊은 문화적 충격을 받은 것은 물론 일본에 대해 막연히 가져온 편견과 피해의식을 재고해보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2. 일본 사람들의 친절함에 관하여……
어느 여행길이고 간에 제가 가장 관심 있게 보는 것은 사람입니다. 뛰어난 문화재나 유명한 먹거리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미이긴 하지만, 오며가며 스치는 그 지방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이 제겐 가장 큰 재미입니다.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다라는 통속적인 말도 있긴 하지만, 그 같음 속에서 다름을 찾아내는 것이 여행의 묘미가 아닌가 싶습니다. 어차피 사람이 근간이 되는 소설을 쓰려고 마음먹었고, 소설 덕택에 간 여행이기에, 저는 좋은 기회로 여기고 주위의 많은 일본 사람들을 눈여겨보았습니다. 
국내에서 간혹 마주쳤던 일본인과 현지에서 만난 그들은 사뭇 달랐습니다. 물론 여행에서 오는 흥취와 이방인이라는 심리적인 위축이 다소 작용했겠지만, 소수가 돼서 바라본 일본인은 예전에 제가 갖고 있던 생각과 많이 달랐습니다. 국내에서 일본 여행객들을 바라보는 제 시각은 언제나 '한국인 집단'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제가 의식하지 못하는 동안 저 스스로 한국인이라는 집단의식 속에서 그들을 바라봤던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해서 일본인들을 굴절된 시선으로만 봐왔습니다. 학교 교육이나 사회에서 주입한 일본인에 대한 편견과, 역사 교과서·독도·종군위안부·자위대·고이즈미 신사참배·대일 무역 적자 등 많은 문제들이 그들을 곱게 보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일본 여행에서 저는 한 개인으로서 일본인을 보고 돌아왔습니다. 사회가 제게 강요한 일본인에 대한 비우호적인 시각에서 자유로워져서 제 나름대로의 잣대로 그들을 바라봤습니다.
일본어에 능통한 가이드가 늘 동행했지만, 저희 일행은 일본인과 접하고 싶어서 일부러 길잡이를 자처하고 나선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더듬이를 잃은 풀벌레처럼 일행의 발걸음이 빗나가기도 했지만 스스로 부딪쳐봤습니다. 특히 저는 일본에서 맞는 첫 새벽에 제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고 혼자 길을 나섰습니다. 단체 생활에서 지양해야될 행동인 줄 알지만, 일본의 아침을 느끼고 싶은 충동을 누를 수가 없어서 교토(京都) 관광지도 한 장 들고 길을 나섰습니다. 일정이 시작되기 전까지 돌아온다는 속다짐과 일본인과 많은 대화를 나눠보겠다는 다부짐 꿈을 가지고 말입니다.
저는 눈이 내리기 시작한 교토의 분주한 아침거리를 활보하다가, 제 또래의 젊은이들에게 다가섰습니다. 쓰미마셍이라고 말문을 연 다음 콩글리쉬를 지껄이자 두 명의 젊은 일본인들은 약간 당황한 듯 했습니다. 저는 일본어로 표기된 지도를 들이밀며 제 위치를 알려달라고 재차 물었습니다. 제 영어가 짧은 탓에 그들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하지만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청년과 짧은 치마를 입은 아가씨는 손을 내젓거나 자리를 뜨지는 않았습니다. 서로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제 말 속에서 알아들을 수 있는 단 하나의 단어라도 찾으려는 듯 귀를 기울였습니다. 또한 제 손짓 발짓에도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바쁜 출근길인데도 이방인을 위해 그들은 눈을 맞으며 고역스런 제 콩글리쉬에 온 신경을 쏟았습니다. 제가 손바닥에 我, 現位置 라고 쓰고 지도를 보여주자 그들은 활짝 웃어 보였습니다. 그들은 그제야 제 말을 알아듣기 위해 긴장했던 근육을 풀고 하이, 라고 밝게 말했습니다. 아가씨는 덧니를 드러내며 손가락으로 산조역(三條驛)을 꼭 짚어주었습니다. 저는 어느새 머리가 젖어버린 두 일본인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허리를 깊숙이 숙였습니다. 그리고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라고 짧은 일본어로 감사를 표현했습니다. 그러자 둘은 그런 제 모습에 오히려 더 미안해하며 지하철역으로 뛰어갔습니다. 저는 두 명의 일본인이 짚어준 산조역을 기준으로 몇 블록을 더 걸어보았습니다.  
여행하면서 만난 일본인은 제가 처음 만난 두 젊은이들처럼 모두 밝고 친절했습니다. 낯선 길에 당황하는 우리들을 위해 목적지까지 안내해준 40대의 술 취한 가장부터, 요철이 심한 도로를 지나가겠으니 조심하라고 안내방송을 하는 버스 기사, 버스에서 내리는 우리 일행 모두에게 서툰 우리말로 '안뇽히 가세요'라고 인사하던 아저씨, '안정환'을 좋아한다며 월드컵 때 우리나라를 응원했다는 젊은 여성, 한국인이라는 말에 푸근한 수다를 떨던 일본식 빈대떡인 오코노미야키 집 주인아줌마, 제가 부끄럽게 내민 10엔 짜리 동전에도 기쁘게 받던 유니세프 자원 봉사단 소녀들, 말이 통하지는 않았지만 손짓 발짓으로 우리를 환영해준 가와바타야스나리 문학관(川端康成文學館)의 안내원 아줌마, 문청들의 두서 없는 질문에 진땀을 빼며 정성껏 대답해주던 미시마유키오상 수상자 호시노 도모유키(星野智幸), 좋은 글 쓰라며 우리네 할아버지처럼 다독여주던 동경외대 사에구사 도시까스(三枝壽勝) 교수, 뚱뚱한 몸을 이끌고 이곳저곳 우리를 안내하며 틈틈이 배운 한국말도 뽐내던 쇼에이사(集英社)의 이와모토 노부토(岩本暢人)씨까지 한결같이 밝고 친절한 모습뿐이었습니다.
타인을 대하는 그들의 친절한 모습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돌아서면 그들의 지나친 친절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 반발심이나 자격지심 때문이라고 애써 그 거치적거림을 누르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친절이 진실인지에 대한 의구심은 쉽게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친절은 몸에 밴, 마치 반사신경처럼 기계적으로 튀어나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닌 그저 당연히 그렇게 해야된다는 관습의 소산일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노인이 버스에 오르면 당연히 자리를 양보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한번 생각을 그쪽으로 몰아가니 그들이 허리를 그렇게 굽히는 모습과 덧니를 드러내며 웃는 웃음이 전부 공허한 것 같았습니다. 그런 미심쩍은 생각을 지울 수는 없었지만 우선 그들의 친절은 아름답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친절이 진심이 아닌 그저 관습이라고 해도 그다지 문제될 게 없을 것 같습니다. 타인을 친절하게 대접하려는 그들의 미덕을 일부러 폄하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친절에 대한 최종적인 평가는 뒤로 미룰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9박 10일의 짧은 일정과 그들에 대한 선지식이 전무한 저로서는 그렇게 밖에 할 수가 없습니다.
  3. 일본의 문화재를 보고……
학교에서 역사 시간을 통해 배우는 일본은 문화적으로 미개한 나라였습니다. 중국에서 유입된 문화가 우리나라에서 발전돼 일본으로 건너간 것은 물론 우리의 독자적인 문화 특히 백제의 고급 문화가 대량으로 유입됐다고 배웠습니다. 칠지도(七支到)·미륵반가사유상·호류사 금당벽화 같은 문화재나 백제유민·조선통신사 같은 역사적 사실로 일본에 보다 문화적으로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배웠습니다. 일본에 대한 근대 역사와 경제에서 오는 반감과 위축을 고대역사에서 위로 받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일본의 문화재와 유적들을 돌아보면서 고대의 역사적 우월감에 자위하고 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첫 일정이 시작된 6일부터 9일까지 우리는 교토 고쇼(京都御所), 니조조(二條城), 오사카조(大阪城), 킹카구지(金閣寺), 료안지(龍安寺), 깅가쿠지(銀閣寺), 헤이안진구(平安神宮), 키요미즈데라(淸水寺), 코푸쿠지(興福寺), 도다이지(東大寺), 호류지(法隆寺) 등 교토와 나라 등지의 문화재를 바쁘게 돌아봤습니다.
교토 고쇼는 수도가 도쿄로 옮겨지기 전까지 천황이 거주하던 궁전입니다. 지금도 일본 천황이 즉위식을 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일행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교토 궁궐의 수호와 천황을 방문할 때 숙소로 쓰기 위해 만든 니조조를 둘러봤습니다. 이곳에는 우구이수바리(꼬꼬마루)라는 특징적인 장치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마루판을 밟으면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도록 한 장치인데, 외부에서 오는 적의 침입을 미리 알기 위해서 고안된 것입니다. 칼로써 정권을 잡은 통치자들의 불안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겹겹이 해자(垓字)를 두르고 높은 언덕에 위압적으로 서있는 오사카조는,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권력의 상징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해서 사용하기도 한 곳 입니다. 오사카의 상징이라는 말도 있는 성이긴 하지만, 성의 구조나 위치 등을 봤을 때, 도요토미나 도쿠가와 등 무력으로 정권을 잡고 유지해온 막부의 한계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킹카구지는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의 동명 소설을 흥미 있게 본 저로서는 꼭 보고 싶은 곳이었습니다. 작품 내에서 절대미로 상징되는 금각(金閣)을 꼭 보고 싶었는데, 공사중이서 구조가 똑같다는 은각사를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일본 곳곳에서 작은 마당에 오밀조밀하게 꾸민 정원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일본의 정원양식은 자연의 축소판을 만드는 '쯔끼야마(築山)'와 모래나 자갈 등으로 강, 바다를 표현하는 '가레산스이(枯山水)'로 나뉜다고 합니다. 후자의 대표적인 정원은 료안지의 석군(石群, The Rock Garden)입니다. 경내의 마당 한 쪽에, 모레·자갈·돌등을 이용해 바다와 섬을 축소시켜 놨습니다.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석군을 바라보고 있으니, 정말 바닷가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헤이안징구는 효명천왕을 모시고 있는 신궁인데, 일본의 다른 전각들이 채색을 하지 않은데 비해, 붉은색 단청을 한 건물들이 인상깊었습니다. 기요미즈테라는 둘러본 일본의 다른 절과 달리 산 속에 위치해 있어서 낯설지가 않았습니다. 반쯤 공중으로 튀어나온 전각을 받치고 있던 목조구조가 인상깊었습니다. 또한 청수라는 사찰 이름처럼 깨끗한 물을 받아먹을 수 있게 해놓은 곳이 있었습니다. 낙수처럼 떨어지는 물을 장대 끝에 달린 물컵에 받아먹으며 소원을 비는 일본인들의 모습이 소박해 보였습니다. 고푸쿠지에서는 오층석탑을 비롯해 다수의 국보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도다이지는 이름처럼 거대한 규모가 보는 이를 압도했습니다. 세계 최대의 목조 건축물인 다이부츠텐(大佛殿) 안에는 역시 세계 최대의 청동 불상이 있었는데 높이가 15미터에 무게가 252톤에 달했습니다. 담징의 벽화로 익숙한 호류사에서는 미소를 살짝 머금은 모습이 친근한 백제관음을 만날 수 있었는데, 이곳이 일본 미술의 발상지라는 걸 생각하면서 마음 한 쪽이 벅차 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일본 문화재의 가치와 예술성에 대해 논할 만한 심미안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앞서 장황하게 일본의 문화재들을 늘어놓은 것은, 일본인 그들이 자신의 문화재를 정성껏 가꾸는 모습을 곳곳에서 봤기 때문입니다. 가는 곳마다 보수 공사를 안 하는 곳이 없었고, 과장되게 말해서 먼지 한 점 앉아있는 문화재가 없었습니다. 문화재가 이렇게 깨끗하게 관리된다는 것은 관리자의 노력뿐만 아니라 방문객들의 성숙한 관람 태도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재를 보러온 일본인들 스스로 자신들의 문화를 소중하게 생각하기에 문화재들이 잘 보존되는 것 같았습니다. 
얼마 전에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자들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 화성에 갔습니다. 유럽 혹은 일본을 다녀온 우리는 자신들이 다녀온 나라들의 문화재와 우리 것을 비교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일본의 잘 관리된 문화재와 성숙한 관람 태도를 체험하고 온 저로서는 수원 화성의 실태가 안타깝기만 했습니다. 곳곳에 버려진 과자봉지와 음료수 캔이 부끄러웠습니다.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훌륭하기만 할 우리의 문화유산이 우리의 손으로 더렵혀지고 있는 현실에 안타까웠습니다. 일본인들의 문화재 사랑은, 우리의 문화재가 부족한 재원과 인력 때문에 하루가 다르게 상해 가는 모습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우리의 문화재가 개발이라는 명목 때문에 땅속에 파묻히기도 하고, 무관심과 몰이해 때문에 도굴꾼에 의해 해외로 밀반출되기도 하며 수난을 당하고 있는 현실에서, 과거의 희미한 기억으로 우리가 일본에게 선진문화를 전수해줬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4. 일본의 문학을 체험하며……
도쿄와 나라를 거친 일행은 본격적인 문학 기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내에서 한국 문학을 연구하는 안우식 교수, 사에구사 도시카쓰 교수와 소설가 호시노 도모유키와의 간담이 있었습니다. 또한 도시샤대(同志社大) 윤동주 시비, 가마쿠라 근대문학관(鎌倉近代文學館), 설국의 무대인 에치코 유자와(越後湯澤), 일본 유수의 출판사인 슈에이사(集英社),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관, 시가나오야(志賀直哉) 생가, 도쿄의 대형 서점 등을 방문했습니다.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까지는 그곳의 문학 환경이 우리나라보다는 한결 낳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오엔 겐자브로(大江健三郞) 같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두 명이나 배출했고, 아쿠타카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를 비롯해서 미시마 유키오, 나쓰메 소세키, 다자이 오사무(太宰治) 등 걸출한 작가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현대에도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를 비롯해서 무라카미 류(村上龍), 요시모토 바나나(吉本ばなな), 마루야마 겐지(丸山健二) 등 좋은 작가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천엔 짜리 지폐에는 소설가인 나쓰메 소세키가, 오천엔 권에는 메이지(明治)시대 여류소설가인 히구치 이치요(桶口一葉가) 그려져 있기에 그런 생각이 더했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대중 교통의 승객 중 많은 사람이 책을 읽고 있는 모습에서 문학의 길이 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일본 내에서 문학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의 말은 회의적이었습니다. 독서 인구가 상대적으로 많긴 하다고 하지만, 오락성이 짙은 대중문학에만 몰리는 데다 그나마도 영화나 만화 때문에 많이 줄어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문예출판사도 문학성보다 상업성을 따져서, 여고생에게 문학상을 주기도하는 등 이력이 특이한 작가를 고르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런 상업논리에 밀려 웬만한 대형 서점에서도 순수 문학작품이 점차 서가 한쪽으로 밀려나고 있고, 게다가 시집 같은 경우는 찾아보기 어려운 형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회의는 일본 국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영상과 문화 자본에 위기를 맞고 있는 우리 문학 전반에 대한 우려이기도 합니다. 
국내 문학계에서도 과연 영상의 시대에서 문학이 위기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쟁이 활발했습니다. 활자 매체의 종말을 예언하는 극단적인 주장도 있긴 했지만, 인터넷 세대인 저는 새로운 변화의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우선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학 작품에 대한 개념을 유동적으로 변경한다면 영상의 시대에 문학은 더 활기를 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문학작품은 책으로 펴져서 나온 일차적 생산물만을 지칭했습니다. 이제 영상의 시대에는 문학작품은 작품(work)이 아닌 텍스트(text)로서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완성된 하나의 작품이기도 하면서 미완성인 텍스트로 말입니다. 그래서 영화, 음악, 연극 등 모든 분야에 변용 돼서 쓰일 수 있는 유동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어차피 영상의 근간은 문자 텍스트라고 생각합니다. 영상 산업의 발전은 문학의 위기일 수도 있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문학의 기회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영상 뒤에는 문화 자본의 상업 논리가 독소처럼 번져있습니다. 문화 자본의 유입으로 문학 시장이 양적으로 팽창한 것은 사실이지만 질은 예전만 못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문화 자본의 효율적인 운용은 이번에 방문한 쇼에이사에서 적절한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쇼에이사는 일본의 대표적인 출판사입니다. 우리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논노, 영챔프 같은 잡지는 물론 슬램덩크 같이 우리에게 친숙한 대부분의 일본 만화도 출판하는 곳입니다. 이곳 관계자는 성인잡지와 만화로부터 벌어들인 돈의 상당부분을 순수 문예 작품들을 출판하는데 쓴다고 했습니다. 기업이나 자본이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수입성이 높은 곳에 투자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문학은 좀더 가벼워지고 예술적이기보다는 오락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쇼에이사에서 보는 것처럼, 자본의 주체가 그 운용에 있어서 성숙한 태도를 보인다면 문화 자본의 유입이 바람직하지 않은 사실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문화 자본이 수익의 납득할 만한 수준 이상을 순수 문학에 지원을 하고, 지원을 받은 작가들은 좋은 작품을 시장에 내놓고, 독자는 그 작품을 사보며 문화비용을 기업에 지출하는 바람직한 회전이 활발하게 이뤄지면 좋겠습니다. 
5. 일본의 뉴스를 보며……
아침저녁으로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텔레비전을 잘 보지 않는 편인데,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일본 텔레비전 앞에서 틈나는 대로 앉아 있었습니다. 특히 일본의 뉴스는 꼬박꼬박 챙겨서 시청했습니다. 말은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자막으로 나오는 한문을 통해 대충 무슨 내용을 보도하고 있는 지는 알 수 있었습니다.
뉴스를 보면 빠지지 않는 것이 강력사건 보도였습니다. 일본 내에서 이지메나 학원 폭력 등이 문제가 되고 있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매일 아침저녁으로 보도되는 살인 사건을 보며 생각했던 것보다 폭력문제가 더욱 심각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런 살인 사건은 일본의 사회가 지나치게 개인화되고 산업화된 탓에 생긴 생명 경시풍조가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살인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가 사실 보도와는 괴리가 있어 보였습니다. 살인 사건이 날 수밖에 없는 사회적인 원인 규명보다는 오락성에 치중한 모습이었습니다. 특히 피의자 주변 사람들의 인터뷰, 살해 과정에 대한 상세한 묘사, 피의자의 자세한 이력 소개 등이 곱지 않게 보였습니다.
여행을 하면서 일본 사회가 개인화됐다는 것은 많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식당에서 일본의 개인화를 여러 번 느꼈습니다. 식당에 가면 우리 일행은 여행자이기 때문에 같은 음식을 시키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서로 다른 것을 시켜서 나눠먹는 게 일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음식을 아무 거리낌없이 집어먹는 우리를 일본인은 미개인 보듯 했습니다. 한 그릇에 여러 반찬을 담아 나눠먹는 문화에 익숙한 우리로써는, 그들의 시선이 낯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본에 건너갈 즈음 북핵 문제와 이라크 침공 문제로 국제 정세가 시끄러웠습니다. 일본도 두 민감한 사항에 대해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북한과 이라크가 뉴스 전면에 자주 나왔습니다. 그 중에서 제 눈길을 끈 것은 아무래도 북한을 보도하는 일본 공중파 방송의 태도였습니다. 일행이 도일(渡日)하기 바로 전에 강제 납북된 일본인 문제가 불거졌고 , 그로 인해 조총련계 여학생이 지하철 안에서 일본인에게 저고리가 찢기는 일도 있었습니다. 강제 납북된 일본인의 처리 문제 때문인지 일본 언론이 보여주는 북한은 언제고 개전 할 것만 같아 보였습니다. 근래 들어 우리나라는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일본 뉴스에서 자료 영상으로 보여주는 북한은 여전히 호전적이고 전투적이었습니다. 온몸을 무기로 쓰는 특수부대 요원들의 훈련 모습과 각종 전투 장비, 광신도처럼 붉은 깃발을 흔들며 김일성 부자를 찬양하는 모습뿐이었습니다. 이는 일본의 군국주의와 맞물려 있는 것 같아 불안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경제대국인 일본은 자위대법까지 개악하면서, 군국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미국을 등에 없고 자위대 예산을 증강하고 해외파병까지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군국화의 명분을 자국민들에게 은연중에 강요하기 위해서, 북한을 이용하는 것 같아서 씁쓸하기만 했습니다.
6. 여행기를 끝내며…
역사적인 이유 때문이겠지만, 노마만리에서 김사량은 뿌리깊은 반일 의식을 곳곳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중국인과 한국인에게 만행을 저지르는 일본인, 포로로 잡혔을 때는 마치 개처럼 목숨을 구걸하는 일본인들을 묘사함으로써 그가 일본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채만식의 작품 '태평천하'의 주인공인 윤지관은 김사량의 생각과는 정반대에 있습니다. 윤지관은 일본이 근대 문물을 들여옴으로써 낙후되었던 조선을 개화시켰다며, 일제 강점기를 태평천하라고 말하고 다닌다. 하지만 양극단에 치우쳐 있는 두 시각은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9박 10일의 일정으로는 1억 2천이 넘는 사람이 사는 일본을 둘러보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게다가 일본에 대한 선지식과 경험이 없어 시선이 깊지 못한 저로서는 부족하기 만한 기행문을 남길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번 일본 여행을 통해서 느낀 것은 앞서 김사량과 채만식의 작품을 예로 들었던 것처럼, 일본에 대한 편향된 시각을 지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슷한 것도 많지만 그것보다 훨씬 다른 일본 문화에 매력을 느끼고 돌아와서, 이질적이고 이색적인 문화에 대한 포용력도 넓어 졌습니다.
해외여행이 보편화됐다고는 하지만 경제적인 문제에 걸려 대학생에게는 쉽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대학생에게만큼 해외여행이 필요한 시기는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세계와 사회에 대한 깊은 시각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자각이 필요한 시간에 외국을 둘러보는 일은 아주 의미가 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 대산대학문학상의 부상으로 시행된 문학기행은 어느 기획보다 돋보였습니다. 이제 1회를 치러낸 이 문학상이 앞으로도 계속 발전해서 좀더 많은 문청들에게 문학과 세계를 좀더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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