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기행문

일본문학기행문
글쓴이 : 성주현 날짜 : 12.03.07|조회 : 6680



1.
'처음 오는 곳인데도 전혀 낯설지 않군.'
영화 '천국보다 낯선'의 한 장면에서 나오는 대사이다.
내게 일본이 초행은 아니었다. 2001년 여름, 일본 후쿠오카를 방문했을 때 나는 '낯설지 않음'을 느꼈고 그것이 나를 슬프게 했다. 세계의 서구화로 획일화되어 가는 풍경을 확인하는 것 같았고 그것도 동양에서 가장 서구에 가깝게 다가가고 있는 두 나라가 그렇게도 낯설게 닮아있음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일본의 그 느낌은 내게 오래도록 남아있었고 두 번째 방문의 일본도 역시 다르지는 않았다.
 '최신식'과 '첨단'을 달리는 '현대'의 콘크리트 구조물인 공항건물이 우리를 배웅하고 몇 시간만에 또 우리를 맞이했다. 우리는 아주 편안하게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일본의 땅에 발을 딛었다. 여기저기 쓰여있는 글자와 간간이 들려오는 낯선 말소리만 아니라면 한국과 일본은 전혀 구분할 수가 없었다.
나도 역시 현대문명의 이기를 수혜 받고 또한 누리고 살아가는 사람에 불과하다. 오히려 그 편안함과 혜택을 아주 적극적으로 즐기고 잘 사용하는 사람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전세계가 하나의 모델을 향해 맹목적으로 달려가고 그로 인해 획일화되는 과정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고 느낀다. 우리 나라 어디를 가든지 그 도시의 특성은 점점 사라져가고 전 국토가 하나의 도시를 지향하며 변모해 가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그리고 그것은 풍경의 변화뿐만이 아니라 인간 정신에도 변화를 가져오는 것 같았다.
공항을 나와 숙소를 가고, 또 여행을 다니는 일본 각지에서 본 일본 거리의 특징은 희한하리만큼 조용했다. 그 많은 번화가에서 나는 그런 고요를 본 적이 없다. 버스에서도, 지하철에서도, 거리에서도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할 말을 바로 옆에 있는 상대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민족성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본주의와 함께 근대성의 특성중 하나인 개인주의의 산물임을 간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말소리에 불편을 느끼는 것을 싫어하는 만큼 자신들의 말소리가 다른 사람에게 들리는 것을 신경 쓰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 전 서울에 올라갔을 때 에스컬레이터에 올라선 사람들이 한쪽으로 바짝 붙어 서 있는 것을 보고 어리둥절해 한 적이 있다. 다른 비워진 쪽으로는 사람들이 걸어서 에스컬레이터를 올라가고 있는, 나에게는 다소 낯선 풍경이었다. 물론 에스컬레이터를 걸어서 올라가야 할만큼 바쁜 사람들을 위해서 하는 배려 정도로 이해할 수 있고, 그것을 문화시민의식의 성숙으로 좋게 풀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 풍경에서 슬픔의 감정을 느꼈다. 그것은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걸어서 올라가야 할 사람을 만든 현실에서 느낀 슬픔과, 이제는 누구도 남에게 불편함을 받거나 주지 않아야 하는 근대성의 극단을 보는 슬픔이었다.
물론 그러한 것을 무조건적으로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다. 거리에서 소곤거리는 것과 에스컬레이터의 한 줄서기는 때로는 미덕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거기에는 난 인간의 냄새를 맡을 수 없었고, 곧 우리 나라와 또 그 뒤에 우리와 같이 될 여러 나라들도 곧 그렇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숨이 막혀왔다.
너무나도 낯설지 않아 낯선 일본거리의 그 고요 속에서 나는 그러한 슬픔과 공포를 느끼며 걷고 있었다.
2.
이번 문학기행의 대부분은 일본의 문화재와 문학관등을 보면서 보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 많은 그 유명한 쿄토, 나라를 비롯해 도쿄와 오사카, 에치코 유자와 등을 돌며 본 문화재들은 정말이지 잘 보존되어있었고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
내게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 있다. 그것은 아마 교토였을 것이다.
쿄토에는 옛날 일왕이 살던 궁전과 그 주변 막부들의 성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옛 일왕의 궁전을 들어갔을 때 관광 가이드가 사람들을 모아 데리고 다니며 설명을 해 주었다. 우리의 뒤에는 그 문화재를 훼손시키는 것을 막으려는 듯 경호원이 굳은 표정과 의심스런 눈초리로 따라왔다. 그곳에서 그 가이드의 영어발음이 좀 희한했지만 나 역시 영어실력이 그리 좋은 것이 아니어서 그 영어 설명이 오히려 잘 들렸던 것 같다. 어쨌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그곳이 어떤 곳이었는지 설명해 준 가이드가 내 상상력을 자극하였는지 그 빈 궁전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무사들과 사신들이 어느새 궁전을 채우기 시작했고 하인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정원을 지나 우리는 일왕이 연회를 베풀고 있는 곳까지 가이드를 따라 갔다. 빈 마당과 마당을 둘러싼 목조건물이 일왕이 연회를 베풀던 곳이라는 설명에 곧 연회가 시작되었다. 신하들은 기생들에게 술상을 받고 있었으며 마당에서 많은 무희들과 광대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풍악의 한 가운데 병풍처럼 두른 시녀들에 둘러싸여 웃고 있는 일왕을 본 순간 나는 '이야.. 좋겠네.'라고 탄성을 질렀다. 그리고 곧 후회했다. 그 다음 순간 내게 보인 것은 일왕이 아니라 그 주변에서 술 따르는 하인과 마당에서 춤추는 광대의 표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일왕에게 술을 따르는 시녀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실수로 술병이 손에서 미끄러지기라도 한다면. 그래서 일왕의 흥이 깨지기라도 한다면...
마당에서 춤추는 광대 중 한 녀석은 감기몸살이었다. 머리는 어지럽고 몸은 죽을 만치 힘든데 그는 감기몸살이니 일왕의 연회에서 춤을 추는 것에 나갈 수가 없다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의 얼굴은 고열로 붉었으나 애써 웃음을 지으며 몸이 익히고 있는 춤대로 돌고 또 돌았다.
내가 이제껏 본 모든 문화와 역사는 일왕과 그 옆에 있는 귀족들의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거기에는 시녀와 광대도 함께 있었다. 바로 옆 니조 성을 갔을 때에도 쇼군의 옆에 칼을 들고 앉아있는 소년은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러나 거기서 비로소 나는 아까 갔던 일왕의 궁전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하인들이 숨어서 농땡이를 칠 수 있는 장소를 찾아내고 씨익 웃을 수 있었다. 그곳에 모여서 귀족들과 사무라이들의 욕을 하기도 하고 일을 피해 숨어있기도 한 하인들에게 나는 당신들은 일왕의 궁전에 있는 하인들보다 나을 거라고, 그들은 내가 아무리 찾아봐도 숨어서 이렇게 게으름을 피울 수 있는 곳이 없더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들은 내게 역사 속에 자신들의 모습을 봐달라는 말만을 할뿐 더 이상 대화를 할 수는 없었다.
3.
일본에는 절도 상당히 많이 있었다. 문화재의 대부분이 절이었다. 그래서인지 우리 나라의 절과 많은 비교가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건축물도 그렇거니와 특히 불상과 조각상의 솜씨와 섬세함에서 우리 나라의 것이 더 좋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예전부터 불상을 보면서 그 만든 솜씨와 기술로 보아 상당한 경지에 도달해 있음을 느끼면서도 그것에서 미켈란젤로와 같은 서양 조각가의 작품에서 느끼는 감흥을 느낀 적이 없다. 그것은 전도된 오리엔탈리즘과 같은 감정이 아닌, 무언가가 부족하다는 느낌이었다. 불국사나 석굴암의 불상도, 극찬을 받는 여러 가지 불상들도 그 기술에는 감탄하면서도 조각의 예술성에 무언가가 부족함을 느끼는 것은 왜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것을 내 나름대로 깨닫도록 한 곳이 바로 나라에 있었던 일본 국보관이었다.
그곳은 일본의 국보들을 모아 전시해 놓은 전시관이었는데 대부분이 조각상들이었다. 엄청나게 큰 팔이 수 십 개나 달린 불상을 비롯한 많은 국보들이 있었는데 역시 우리 나라의 조각상의 솜씨에는 못 미친다고 느꼈지만 그래도 대단한 것들이었다.
그곳 유리관 속에는 불상들과 함께 요괴상과 여러 가지 신들의 형상들이 들어있었다. 나의 눈길을 확 사로잡은 것은 그토록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불상 옆에 서있는 요괴상들과 각종 신들의 조각이었다. 갖가지 역동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요괴상은, 그리고 팔뚝과 다리에 거칠지만 튀어나와 있는 근육의 힘줄들은 그 옆에 아름답게 다듬어진 불상에서 느낄 수 없었던 감흥이었다. 솜씨로 봐서는 결코 불상을 따라갈 수 없는 것이었는데도 말이다. 왜 그런지 궁금해하던 내게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불상의 자세가 왜 그리도 딱딱하게 굳어있어야 했는지...
불상은 그 자세와 손의 모양, 그리고 옷 등에 따라 여러 가지로 구별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것은 불상의 종류에 따라 그 자세와 손 모양, 옷차림 등이 정해져 있다는 말이다. 철저한 규칙에 따라 불상의 자세는 정해져 있고 그것에 입각해 만들어져야 하는 불상의 자세가 자유롭지 못하고 딱딱하게 굳어있을 수밖에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어떤 요괴는 자신의 한 주먹을 머리위로 치켜들고 마치 곧 아래에 있는 인간을 내리쳐 박살을 낼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의 일그러진 인상과 묘하게도 웃고 있는 듯 벌어진 입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너무나도 역동적이고 아이러니한 것이어서 나는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 옆에 있는 한 요괴는 정말이지 실제 내 눈앞에서 곧 입을 열어 무슨 말을 할 것처럼 나를 향해 다가오다 굳은 듯 했다. 그들은 결코 그리스 신화의 신들을 조각한 조각상에서 느끼는 감흥에 뒤지지 않는 느낌을 주었다.
예술에서 중요한 한 요소는 자유가 아닐까, 규칙과 형식을 깨고 벗어났을 때 비로소 진정한 예술성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형식과 틀에 얽매인 예술작품은 ―그것이 미술이든, 음악이든, 문학이든 간에― 아무리 완벽하게 잘 만든다 해도 무언가가 부족한 것이 되지 않을까. 마치 잘 만든 불상이 내게 요괴상이 주는 감흥을 주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4.
일본문학기행에서 문화재 관람 이상으로 내게 좋은 경험이 되었던 것이 문인들과의 대화였다. 소설가 호시노 도모유키와 평론가 안우식 교수님, 그리고 한국 근대문학 연구자로 유명한 사에구사 도시카즈 교수님을 만났다. 그중 호시노 도모유키와의 간담회 때이다.
도쿄에 있는 호텔 로비에서 만난 호시노 도모유키씨는 상당히 젊은 작가였다. 그래서였는지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수줍은 듯한 미소를 자주 짓는 호시노 도모유키와 그 호텔 로비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호시노 도모유키의 소설에 관한 이야기부터 문학, 사회현상, 디지털문학, 월드컵 등에 이르기까지... 그러던 중 민족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일본은 자주 사용되는 표현으로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불리운다. 나 역시도 '일본인'하면 좋은 느낌보다는 적대적이고 불편한 느낌을 더 많이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두 나라의 역사와 지리적 위치가 많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하물며 일본에 의한 피해를 직접 체험한 어른들의 앙금은 나보다 훨씬 더하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일본인으로서의 인간'과 '내가 일본에 와서 만난 인간'은 다른 것이었다는 것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언젠가 나는 '테츠'라는 나보다 서너 살 어린 일본 학생을 만난 적이 있었다. 우리는 서로 어설픈 영어로 겨우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그 아이는 '일본인'이기 이전에 '내 세대의 학생'이었다.
호시노 도모유키의 경력은 특이했다. 그는 수년간을 남미에서 살았으며 일본과 미국에서 모두 산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였는지 그는 국가와 민족이라는 장벽에 가로놓인 편견과 선입견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나는 동감했고 우리는 '일본인'과 '한국인'이기도 하지만 '현대인'이라는 점에 일치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국가를 부정하지도 않고 민족개념을 긍정적으로 보는 관점이기도 하지만 이제껏 있어왔던 그러한 국가적 편견에는 깊이 반성하고 성찰해볼 가치를 느꼈다.
일본의 많은 점, 특히 파쇼적이고 쇼비니즘적인 성향의 국가적 색채 같은 것은 정말이지 싫어하지만 그곳에는 역시 우리와 같은 많은 종류의 인간들의 군상들이 살고 있으며 그 중 깨어있는 사람들도 존재함을 간과해서는 안되었던 것이다. 중국인이라고 모두 만만디가 아니듯이, 이탈리아인이 모두 다혈질이 아니듯이, 그러한 편견을 버리고 보았을 때 그곳에는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나와 같은 문제의식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이 보였다.
나는 예전부터 우리 나라는 일본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고 역설해 왔다. 이 말은 지금 생각컨데 어떤 면에서는 맞고 어떤 면에서는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반드시 일본식 군국주의와 전체주의를 우리 사회에서 뿌리뽑아야 하며, 자본주의의 맹신으로 달려가서는 안되지만 그 나라에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 살고 있으며 그들과 우리는 하나도 다를 바가 없는 지도 모른다. 한 인간이 일본 땅에 살고 있고 또 한 인간은 한국 땅에 살고 있는 것이므로 우리는 그들을 거울을 보듯이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의 문제는 우리 나라가 고민하고 있거나 곧 고민해야할 문제인지도 모른다.
나는 처음 일본에 도착했을 때 느꼈던 답답함과 불편함 대신에, 일본에도 우리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고 또한 그곳에도 전체주의를 비판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고, 우리와 같이 살아 숨쉬고 고뇌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바보같이도 그 당연한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이제껏 우리 나라에 대한 미래에는 희망을 버리지 않으면서 일본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던 나 자신이 얼마나 많은 편견과 어리석음에 빠져있었는지를 느낄 즈음 나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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